국내 현금 절도사상 최대인 이번 사건은 은행직원이 금고 열쇠를 훔치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거액을 빼돌렸는데도 은행측에서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해 허술한 금고관리가 큰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해 불어닥친 코스닥 열풍 이후 사회 전반에 번진 '한탕주의'에다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금융사건에서 보듯이 일부 은행원들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범행▼
7일 오후 9시경 광주 동구 금남로 4가 국민은행 호남지역본부 건물 6층 금고에서 이 은행 어음계 직원 임석주씨(34·광주 북구 오치동)가 2개의 철제 금고에 들어있던 현금 21억1100만원(5000권 1억원, 1만원권 20억1100만원)을 훔쳤다.
임씨는 100만원씩 묶인 현금다발을 현금 수송용 자루 7∼8개에 나눠 넣은 뒤 손수레에 싣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 2층 주차장으로 옮긴 후 자신의 광주32가 7983호 흰색 프린스승용차에 싣고 달아났다.
▼금고실 침입▼
경찰은 임씨가 이날 오후 영업추진팀 문모과장(36)에게 "금고세팅(잠금장치)을 하고 올 테니 카드키를 달라"고 해 키를 받아 갖고 있다가 또다른 직원 2명이 나눠 가지고 있던 금고열쇠를 4층 사무실 서랍 속에서 훔쳐 6층 금고실로 올라간 것으로 보고 있다.
임씨는 금고실 2중 철제문을 카드키로 연 후 철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금고실 안으로 들어가 두 개의 키로 철제 금고를 연 뒤 안에 있던 현금 전부를 가지고 달아난 것으로 추정된다.
▼허술한 금고 관리▼
이번 사건은 담당직원이 금고 열쇠 관리를 소홀히 해 발생했다. 직원들이 서랍에 금고 열쇠를 넣고 잠그기만 했어도 이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또 열쇠를 통합 관리하지 않고 분산 소지시키는 시스템과 금고 담당자가 아닌 직원도 비밀번호를 쉽게 알 수 있는 허술한 보안 시스템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범행이후 임씨 행적▼
임씨는 범행 다음날인 8일 오전 0시30분경 훔친 돈 중 500만원을 신문지에 싸 자신의 아파트 우유 투입구에 넣고 사라졌다. 임씨는 또 이날 오전 6시경 문과장에게 "형님 미안합니다. 금고키를 택시운전사에게 보내니 서광주톨게이트에서 받으세요"라고 전화를 한데 이어 11일 오후 6시50분경 같은 부서 어음담당 여직원에게 "미안하다. 마음이 정리 되는대로 자수하겠다"고 전화를 한 사실이 경찰의 통화내역 조회 결과 밝혀졌다.
▼경찰수사▼
경찰은 임씨가 자신의 프린스승용차를 이용해 현금을 특정 장소에 숨긴 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서울로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21억원이 넘는 현금을 차량 1대를 이용해 옮기는 등 단독범행으로는 수긍되지 않는 점이 있다고 보고 공모자가 있는지를 수사중이다.
이와 함께 경찰은 임씨의 사진이 붙은 수배전단을 전국 각 경찰에서 배포하는 한편 국외로 달아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검찰에 출국금지조치를 요청했다.
▼임씨는 누구▼
84년 1월 상고 졸업 후 국민은행 공채로 입사한 임씨는 본사 등을 거쳐 97년부터 국민은행 호남지역본부에서 근무해왔다. 직원들은 임씨가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주식에 투자했으나 큰 손해를 보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이같은 일을 저지를 만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94년 부인과 이혼한 뒤 96년 재혼한 임씨는 전처와의 사이에 자녀 1명, 재혼녀와의 사이에 2명의 자녀가 있다.
▼국민은행 본점 반응▼
사건 발생 다음날인 8일 상황을 보고받은 뒤 그동안 보안을 지켜온 국민은행측은 14일 "행원이 자신이 관리하는 고객자금을 빼돌린 적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직접 금고를 털어간 것은 창사 이래 처음있는 일 같다"며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도난당한 돈은 고객의 예금이 아니라 추석을 앞두고 긴급자금 수요를 위해 마련해 둔 은행의 내부자금이어서 도난으로 직접적 피해를 본 고객은 없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올들어 발생한 금융사고 | |||
금융기관 | 발생시기 | 사고금액 (억원) | 내용 |
울산종금 | 5월 | 100 | 횡령 |
한빛은행 | 8월 | 580 | 부당대출 |
중앙종금 | 9월1일 | 91 | 횡령 |
평화은행 | 9월2일 | 42 | 횡령 |
부천중앙신협 | 9월5일 | 64 | 횡령 |
국민은행 | 9월7일 | 21 | 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