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銀 불법대출]대출외압 '판도라의 상자' 열릴까

  • 입력 2000년 9월 17일 19시 25분


신용보증기금 대출외압설을 제기한 주인공인 전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 이운영(李運永)씨가 21일 검찰에 자진 출두키로 함에 따라 박지원(朴智元)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 등 권력실세들의 외압 여부가 본격적으로 수사의 도마에 오르게 된다.

검찰이 지난해 6월22일 이씨를 수배하면서 밝혔던 이씨의 비리혐의는 1300만원대의 금품수수. 이씨가 4,5개 업체에 대출보증서를 발급하면서 사례비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가 박 전수석과 박현룡(朴賢龍) 전 청와대 행정관의 대출보증 압력을 거부함에 따라 사직동팀과 검찰로부터 보복수사를 받았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고 국민의 관심 역시 권력실세들의 외압 여부에 쏠리고 있어 이에 대한 조사가 사실상의 핵심이다.

일개 지점장에 불과한 이씨에 대해 서슬퍼런 사직동팀이 내사하고, 검찰 수사도 이뤄지기 전에 신보기금이 서둘러 면직시킨 이유 등을 ‘이씨의 단순 수뢰혐의’로 설명하는 것은 누가 봐도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수배 이후 박 전수석과 박혜룡 아크월드 대표 등이 이씨측과 협의를 계속해 온 이유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대출보증의 외압 여부를 밝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씨와 박 전수석 등 양측의 주장이 완전히 엇갈리는 데다 시간이 갈수록 양측의 입장이 더욱 예각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구두 압력’이란 본래 물증이 잘 남지 않는다는 점도 검찰수사를 어렵게 하는 요인. 특히 박 전수석의 전화압력설은 그가 전화로 “공보수석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했다는 주장에 토대를 두고 있어 아직까지 취약한 게 사실.

그러나 검찰이 의지만 갖고 수사에 임한다면 외압의 실체가 의외로 쉽게 드러날 수 있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상식적으로 설명이 잘 되지 않는 사직동팀의 개입 경위와 이씨가 당시 지점장실에서 박현룡씨의 압력성 청탁을 받은 대화과정 등이 먼저 대질심문 등을 통해 정밀하게 밝혀질 경우 외압설의 진상이 조금 더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를 토대로 보다 중요한 사안, 즉 박 전수석의 압력 및 보복수사 등과 관련된 대목으로 수사를 확대해 나갈 경우 결코 전망이 어둡다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종대·이승헌기자>orionha@donga.com

▼법원 압수수색영장 기각▼

한빛은행에서 불법 대출된 466억원의 행방을 추적해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려던 검찰의 시도가 첫걸음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법원이 “구체적인 범죄혐의가 없이는 금융계좌를 뒤질 수 없다”는 ‘원칙론’을 내세워 16일 관련자 8명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지검은 15일 전면 ‘보강수사’를 발표하면서 “한빛은행 감사 중단과 대출금의 실제 사용처 추적, 그리고 신용보증기금 대출보증 압력 의혹사건 규명에 수사의 초점을 두겠다”고 밝히고 계좌추적을 위해 서울지검 특수부의 계좌추적반을 수사팀에 포함시켰다.

검찰이 대출금을 추적해 풀어야 할 숙제는 △정치권으로의 정치자금 유입 의혹 △신창섭(申昌燮)전 관악지점장과 아크월드 대표 박혜룡(朴惠龍)씨의 정확한 관계 등이다.

검찰은 8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불법 대출된 466억원 중 3억원을 제외한 463억원의 용처가 확인됐다고 밝혔으나 이는 관련자들의 ‘입’과 ‘장부’만을 토대로 한 것이어서 장부상의 설명에 불과할 뿐 실제 사용처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받았다.

계좌추적 영장을 기각한 법원의 입장은 이번 사건에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한 ‘의혹’만으로 개인의 신용정보에 해당하는 금융계좌에 대한 추적권을 남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법원은 99년 감청과 계좌추적 남발에 대한 비난여론이 일자 압수수색 영장 발부의 요건을 대폭 강화해 계좌추적 사유와 대상, 추적기간 등을 엄격히 판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검찰은 ‘정치인 누구에게 불법 자금이 흘러갔다’거나 ‘신씨와 박씨가 공모해 자금을 범죄에 사용했다’는 구체적인 의혹을 근거와 함께 제시해야 한다.

결국 검찰이 영장을 받아 계좌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신씨와 박씨 등 핵심관련자들과 관련 회사의 회계책임자 등에 대한 보강조사가 상당부분 더 필요할 전망이다. 그러나 ‘재수사’가 아니라 ‘보강수사’임을 강조하고 있는 검찰에게 법원의 영장 기각이 하나의 ‘핑계’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검찰의 의지가 관건인 것으로 보인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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