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과징금 배경-파장]'검은 담합' 초강경 응징

  • 입력 2000년 9월 29일 23시 19분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정유5사의 군 항공유 입찰 담합에 대해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 가운데 3개사를 검찰에 고발한 것은 고질적 담합행위에 대한 ‘응징적 처벌’로 이해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들의 입찰 담합으로 국가예산이 낭비되고 군의 유류 수급에 비상상황이 초래되는 등 폐해가 극심한 점을 감안해 강도 높게 처벌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유5사는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을 준비중이지만 이에 상관없이 이번 조치는 정유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응징적 처벌’의 배경〓공정위는 정유사들이 98∼2000년 군 항공유 입찰시 담합했다는 증거를 확보한 데다 특히 올해엔 고의 유찰로 군 비축유를 20% 이상이나 사용(본보 7월7일자 보도)케 한 점을 중시했다.

이와 함께 정유사들이 모든 관련자료를 파기하고 관련자들마저 조사를 방해하는 등 조사에 대한 비협조도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공정위는 또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의 경우 자국에 수출하는 다른 나라 회사의 담합 여부까지 조사해 처벌하고 입찰 담합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이 국제 추세인 점도 강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시장 개방화 추세에 따라 대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일벌백계(一罰百戒)의 강도 높은 처벌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정유업계에 미칠 파장〓이번 조치로 국내 정유업계가 받을 충격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과징금 액수가 한해 순이익 1조300여억원의 19%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기 때문.

또 조사를 방해한 SK 현대정유 인천정유 등 3개사는 검찰에 고발까지 돼 벌금형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고 담합의 피해 당사자인 국방부도 정유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등 별도의 법적 조치를 강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최대 ‘3중의 제재’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SK를 제외한 LG칼텍스 현대정유 에쓰오일 등은 외국 석유기업이 25∼50%의 지분을 갖고 있어 이들 외국기업과 경영상의 갈등을 빚을 소지도 크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경영진 문책 등 일련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공정위의 조사과정에서 국내 정유사들 간의 ‘유착관계’에 일정 부분 금이 간 것도 흘려보낼 수 없는 대목. 앞으로 시장쟁탈을 위한 각축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내 정유사들의 담합은 그 뿌리가 깊은 데다 석유시장 자체가 담합이 용이한 과점구조여서 담합행위 자체가 완전히 사라질지는 앞으로 지켜볼 문제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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