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조선족은 한국에서 한 밑천 잡아 돌아가면 중국에서 한평생 편히 살 수 있다는 ‘꿈’ 때문에 밀입국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사기를 당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
조선족이 몰려 사는 중국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랴오닝(遼寧)성 등 동북 3성에는 한국에 밀입국하려는 사람이 20여만명에 달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코리안 드림’의 열풍이 대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밀입국 현황▼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97년부터 올 9월까지 적발된 중국 조선족과 한족 밀입국자 수는 3973명. 97년 1480명에서 98년 991명, 99년 647명으로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다가 올 들어서는 894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 가운데 한족은 모두 700여명에 불과해 밀입국자의 80% 이상이 조선족이다.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의 경우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됐다가 강제출국 조치된 조선족은 지난해 230명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753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이들 중 650여명은 이미 중국으로 추방됐고 현재 130여명이 출국을 기다리고 있다.
▼밀입국 경로 및 수법▼
지난달 28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 남동쪽 6.5마일 해상에서 조선족 39명을 태운 국내 어선이 목포해양경찰서에 적발됐다. 또 8월31일에는 태풍 ‘프라피룬’이 몰아치는 가운데 밀입국을 시도하던 조선족 82명이 배가 침몰하자 전남 신안군 가거도로 헤엄쳐 나왔다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처럼 전남 남해안이 조선족 밀입국의 주요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은 중국과 가까운 데다 섬이 많아 좀처럼 레이더 감시망에 포착되지 않기 때문.
이들은 주로 중국 어선을 타고 공해상으로 나와 한국 어선으로 바꿔 탄 뒤 새벽에 해안으로 잠입한다. 해안에 도착하면 곧바로 국내 밀입국조직이 미리 준비해둔 관광버스 등을 타고 서울 부산 등 대도시 지역으로 빠져나간다.
목포해양경찰서 관계자는 “목포나 고흥 완도 등은 해안선이 길고 어선의 출입이 잦은 데다 육지 도착 후 부산 쪽으로 이동하기 쉬워 주요통로가 되고 있다”며 “예전보다 잠입루트가 다양해지고 인원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밀입국자들의 실상▼
밀입국자들이 중국 현지 알선책에게 주는 돈은 5만∼6만위안(약 700만∼800만원). 중국에서 교사가 월 900위안(약 11만원) 정도 받는 것을 감안할 때 5, 6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액수다.
요즘에는 밀입국 알선 사기가 많아 현지에서 착수금조로 100만원을 준 뒤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나머지 돈을 알선책에게 건네는 것으로 알려졌다.
밀입국자들은 주로 건설현장이나 식당 공장 등에서 일하지만 임금을 제대로 못 받거나 국내 근로자보다 20∼30% 적게 받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임금을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을 통해 중국 가족에게 송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임금을 안 줘도 불법 체류사실이 탄로 날까봐 업주에게 항의조차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밀입국자들은 서울과 여수의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됐다가 한 두 달만 고생하면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고 중국정부에 100여만원의 벌금만 내면 징역형은 면하기 때문에 ‘한국행’이 끊이지 않는 요인이 되고 있다.
<광주〓정승호기자>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