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상탈출]경북 봉화 청량산 '산중정토'

입력 2000년 10월 18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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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묏부리 두어 송이 뿐이나 강건너 골안에 들어가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 있고 모두가 만길이나 높으며 험하고 기이한 것이 이루 형용할 수가 없다.” 이중환(1690∼1752)이 ‘택리지’에 쓴 청량산의 속살 비경 찬탄이다.

원효와 의상이 절과 암자를 세우고 신라명필 김생과 신라석학 최치원이 글씨를 연마하고 책을 읽으며 입산수도한 곳, 말년의 퇴계가 스스로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 부르며 시를 읊던 산, 그리고 홍건적에 내밀린 고려 공민왕이 은신한 곳.

제천 단양(충북)을 거쳐 백두대간 죽령(소백산)을 넘어 찾은 도립공원 청량산. 봉화땅 남단의 낙동강변에 있다. 매표소를 지나 등반안내 입간판이 세워진 언덕(입석)에 차를 세운다.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 보다는 입석의 산길 등반로로 오른다. 금탑봉 가장자리의 천길 벼랑길을 지나는 코스인데 내외 청량산의 비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고 힘도 덜 든다.

산길로 오르기를 약 20분. 금탑봉 절벽 아래의 암자 응진전(應眞殿)이 보인다. 공민왕을 따라 피란온 왕비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정진했던 곳이다. 5분쯤 더 가면 백척간두의 첨단인 어풍대(御風臺)다.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정면으로 청량산의 열두 뾰족봉우리와 그 아래 협곡의 가파른 산기슭에 들어선 청량사의 당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산기슭에간신히 쌓은 여덟단의 돌축대에 주춧돌을 놓은 법당이며 범종루 요사채와 찻집은 보기에도 애처롭다.

“열두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감싼 형국이니 연꽃잎안의 연화장세계에 청량사는 둘러싸인 셈이지요.” 화엄경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불국토의 형상 아닌가. 주지 석지현(釋智玄)스님의 말을 듣고 금탑봉을 바라보니 이 마저 ‘9층 석탑’ 형상으로 보인다. 지현스님은 단 하나뿐이던 법당(琉璃寶殿·유리보전)마저 비가 들이칠 정도 였던 이 절에 들어와 13년간 정성으로 모든 불사를 주재해 왔다.온 지현스님. 한 때 쇄락한 적도 있었지만 원효대사가 청량사를 창건할 당시만 해도 이 골안은 암자가 27개나 있고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낭랑했던 불법정토 같은 곳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풍대에서 조금만 더 산위로 오르면 김생이 10년간 글씨를 쓰며 수도했다는 김생굴, 최치원의 수도터인 풍혈대도 있다. 퇴계 사후에 후학이 지은 ‘오산당(吾山堂)’, 그 담장 옆에는 ‘산꾼의 집’초막이 있다. 청량사는 여기서 10분정도 거리.

청량사 경내에 들어서면 그윽한 풍경소리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소리를 찾아 계단을 오르면 맨 꼭대기 축대의 유리보전에 닿는다. 청량사의 본존상은 아미타여래. 유리보전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상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다. 유리보전의 현판글씨도 유심히 보자. 공민왕의 친필이다.

절을 나서는 발길이 가볍지 않다. 청량사 처마 아래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는 청아한 풍경소리도, 주지스님과 나눈 다반향초(茶半香初·차의 향기로움을 뜻하는 시구)의 한 잔 차도, 어풍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청량사의 고아한 모습에 앗긴 탓도 있으려니. 그러나 그 보다는 범종각 아래의 찻집 안심당(安心堂)에서 마음에 새겨 온 ‘바람이 소리를 만날 때’라는 화두(話頭)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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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당은 정상에 오르기를 포기한 채 절에서 일행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지현스님이 차려둔 쉼터. 그 찻집에는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화두가 나무에 새겨져 있다. “기왕에 깊은 산속 절집에서 차 한 잔을 하는 김에 ‘인연’의 소중함도 한번 쯤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 남긴 것입니다.”

빨간 버섯이 너와지붕 틈새로 피고 황토 흙벽의 예스러운 굴뚝이 인상적인 안심당. 토방 분위기의 실내에 더 끌린다. 한지로 만든 학등 거북등 원앙등(燈)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나무바닥에는 거적이 깔려 있다. 벽난로가에는 바람개비에 의해 돌아가는 말인형의 그림자가 한지를 댄 전등갓에 비치도록 한 ‘주마등(走馬燈)’도 있다. 적송탁자에서 솔향기가 솔솔 풍기는 ‘솔바람 차’를 들며 통유리 창 밖으로 눈을 돌리니 건너 축융봉 숲에서 구름이 피어난다. 열린 문 사이로 들려오는 은은한 풍경소리.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글쎄….

안심당은 매일 오전 9시∼오후 5시에 문을 열며 월요일에는 쉰다. 054―673―6389

◆패키지 여행

20일부터 매주 금(1박3일), 토(무박2일), 일요일(당일)에 출발.

◆찾아가기

서울↔봉화 249㎞. 서울∼원주(영동고속도로)∼제천(중앙고속도로)∼단양∼죽령∼풍기∼영주(5번 국도)∼봉화(28번 국도)∼봉성∼명호(918번 지방도)∼35번 국도(안동방향)∼청량산 도립공원.

△청량산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054―672―4994 △청량사 054―672―1446

:패키지여행: 20일부터 매주 금(1박3일), 토(무박2일), 일요일(당일)에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