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어느 날 한 가정은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했고, 같은 날 다른 한 가정은 가장이 납북되는 바람에 이산가족이 됐다. 납북자 가족은 그동안 바로 그 탈북자 가족 때문에 가장의 귀환이 좌절됐다는 한(恨)을 안고 살아왔다.
‘탈북자 가족’과 ‘납북자 가족’이라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13년을 살아온 이들이 24일 만나 손을 꼭 잡았다.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 최우영(崔祐英·30·여)씨와 탈북자 김만철(金萬鐵)씨의 막내딸 광숙(光淑·27)씨. 이들은 24일 오전 한 이벤트 회사의 주선으로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첫만남을 가졌다.
이들의 기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87년 1월15일 우영씨의 아버지 최종석씨 등 12명을 태운 동진호가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고 바로 그날 김만철씨 일가 11명이 북한 청진항을 탈출했다. 당시 곧 돌아올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동진호 선원들의 운명은 탈북한 김씨 일가가 ‘남한행’을 선택하면서 180도 바뀌게 된다.
북한 당국은 곧 김씨 일가와 동진호 선원의 맞교환을 제안했고 우리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동진호 선원들은 얽히고 설킨 남북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정치범수용소에 갇히게 됐다. 최씨의 가족이 김씨 가족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24일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우영씨는 이번 주말(28일) 결혼할 예정인 광숙씨에게 “결혼을 축하합니다”라며 환한 웃음과 함께 화장품세트를 선물했다. 광숙씨는 “동진호 분들의 사연을 듣고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어요. 꼭 한번 뵙고 죄송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라며 청첩장과 선물을 전했다.
이들은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2시간 가까이 다정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우영씨는 “광숙씨를 만나고 나니 우리 모두 분단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오늘 만남으로 그동안 갖고 있던 마음의 응어리가 다 풀렸다”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