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디지탈라인 수사]'권력형 비리' 가능성에 초점

  • 입력 2000년 10월 24일 18시 58분


한국디지탈라인(KDL)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세 갈래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 회사 정현준 사장 등이 일부 작전세력과 결탁해 주식시세를 조작한 혐의와 동방신용금고 등에서 수백억원을 불법대출받은 혐의, 그리고 금융감독원 임직원과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로비 의혹 등이다.

검찰은 이들 사안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작전을 통해 시세를 뻥튀기한 주식을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해 거액을 불법대출받고 이 돈 가운데 일부를 로비자금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금감원 등 정관계 로비의혹〓 검찰은 이 사건이 터진 직후 금감원 관계자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사건을 은폐 왜곡하려는 흔적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우선 금감원은 검찰에 마지못해 고발한 흔적이 역력하다. 검찰 관계자는 “A4 용지 3장 분량의 고발장은 무슨 내용인지 모를 정도로 엉성하다”고 말했다. 또 동방금고는 서울지검에 고발하면서 같은 사안인 대신금고 사건은 이 회사가 인천에 있다는 이유로 인천지검에 고발했다. 검사들은 “고의적으로 수사를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겠느냐”고 말한다.

또 금감원은 정사장 등을 고발하면서 이들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의뢰하지도 않았다.

검찰은 이에 따라 금감원 내부에 비호세력 또는 공범이 다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특히 △금감원 장내찬(張來燦) 전 비은행검사국장과 직원들에게 평창정보통신주식과 현금 3억5900만원이 건네졌으며 △코스닥등록기업인 Y반도체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관련 민원해결을 위해 동방금고 이경자 부회장을 통해 금감원 관계자들에게 10억원이 뿌려졌다는 정 사장의 폭로 내용에 대해 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 사건이 단순한 불법대출 사건이 아니라 금감원 내부와 정관계 비호세력이 한데 얽혀 저지른 권력형 비리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여기에 수사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불법대출 경위와 400억원의 행방〓정사장은 KDL 주식을 담보로 동방금고와 대신금고에서 514억원을 불법대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계좌추적을 통해 정사장에게 입금된 것으로 드러난 자금규모는 114억원(동방금고 105억원, 대신금고 9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400억원의 행방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이 자금 중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정사장도 모르는 사이에 정사장 명의로 대출됐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금감원과 합동으로 계좌추적을 통해 불법대출이 이뤄진 경위와 대출금의 사용처 등을 밝혀낼 방침이다.

▽주식 시세조종〓검찰은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윤곽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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