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게이트]검찰 "금감원이 수상하다"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8시 55분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은 불법대출의 ‘주역’이 이경자(李京子)부회장이라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소환 하루만에 사건의 첫 매듭을 풀었다.

이에 따라 향후 검찰수사는 이부회장의 ‘입’과 계좌추적 등을 통해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정관계 로비 의혹이라는 사건의 핵심으로 신속하게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드러난 사실〓이부회장은 26일 오전까지도 검찰에서 한국디지탈라인(KDL) 정현준(鄭炫埈)사장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혐의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이부회장은 검찰이 이날 오후 소환된 전 자금관리책 원응숙씨의 진술을 토대로 자신의 불법대출 행각을 구체적으로 추궁하자 430억여원을 대출한 사실을 시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부회장과 원씨의 관계가 무척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원씨의 진술에서 불법대출과 로비의혹의 단서가 상당부분 확보됐음을 시사했다.

이 같은 원씨의 진술로 “나도 피해자”라며 혐의를 부인했던 이부회장 주장의 신빙성은 급격히 떨어지게 됐고 결국 수사의 큰 방향은 지금까지의 ‘정현준 게이트’에서 ‘이경자 게이트’쪽으로 방향이 바뀌게 됐다. 여기에 이부회장이 불법 대출에 정사장의 주식을 담보로 사용했다는 사실도 확인돼 “이부회장이 내 주식을 이용해 나를 상대로 돈놀이를 했다”는 정사장의 주장도 신빙성을 얻었다.

지금까지 정사장 주장의 주요 골자는 이부회장이 △400억원대 불법대출을 주도했고 △금감원 장래찬 전국장에게 3억5900만원을 입금할 것을 자신에게 부탁했으며 △금감원 직원에게 10억원대의 현금과 평창정보통신 주식을 시가의 3분의 1 가격에 주도록 했다는 것.

▽남은 미스터리〓검찰 관계자는 “이부회장 등이 불법으로 대출한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와 감독기관(금감원)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앞으로의 수사대상”이라고 말해 금감원에 대한 이부회장의 로비의혹으로 수사가 집중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이 이날 유일반도체의 장모 사장을 소환한 것 역시 정사장이 주장하는 “금감원에 대한 이부회장의 로비”가 있었는지와 로비의 결과 사건이 잘 처리됐는지를 묻기 위한 것.

이와 관련, 검찰은 이부회장을 둘러싼 금감원의 미심쩍은 태도에 주목하고 있다. 금감원은 26일까지 계좌추적 결과만을 토대로 불법 대출의 주역이 마치 정사장이며 정사장의 무리한 사업확장이 사건의 원인인 듯한 인상을 주는 발표를 계속해왔다.

금감원은 또 이부회장의 배임 및 상호신용금고업법 위반혐의가 드러나 구속영장이 청구됐는데도 이부회장에 대해 고발이나 수사의뢰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편 금감원 직원이 아닌 정관계 인사 로비의혹이 사실로 드러날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부회장은 물론 정사장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정사장이 만들어 운영한 사설 투자펀드가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로비에 사용됐는지, 여기에 이부회장이 관련됐는지를 확인중”이라고 말했다.

▽모호한 금감원의 태도〓금감원은 현 국장급 간부의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나면서 금융감독기구의 필수요소인 도덕성에 커다란 흠집을 남기게 됐다. 금감원은 지난 해 12월 대신금고에 대한 검사를 실시, 출자자 불법여신 사실을 확인하고도 대표이사의 면직으로 검사를 흐지부지 종결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특히 면직조치됐던 전무이사가 1개월 뒤 금감원에 징계 재심을 요구하자 이를 정직으로 낮춰주었다.

또 당시 대신금고에 대한 검사에서 일선 검사역이 불법여신 규모가 예상 밖으로 클 수 있다며 동방금고와 대신금고에 대한 정밀검사의 필요성을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윗선’에서 이를 묵살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또 정사장은 검찰에 자진출두하기 전 이경자씨가 금감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10억원을 살포, 로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장 전국장 외에 다른 연루자는 없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장씨가 아무리 담당 국장이라 하더라도 대신금고 검사 조기종결 등의 사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상사와 부하직원들의 묵인 또는 공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금감원 감사실에서도 출범 이후 비은행검사1국을 거친 전현직 임직원 116명의 리스트를 작성, 동방금고와 관련한 비위사실 여부를 중점 점검하고 있다.

<홍찬선·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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