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족발집 41년 경영한 실향민 전숙렬 할머니

  • 입력 2000년 11월 7일 19시 44분


《10여개의 족발집들이 서로 ‘맛의 원조’를 자처하는 ‘장충동 족발거리 축제’가 8일부터 10일까지 이 일대에서 열린다.개막 당일인 8일에는 지신(地神)밟기를 시작으로 즉석 캐리커처 그리기 대회, 민속놀이마당 등이 펼쳐지며 9∼10일에는 풍물 퍼레이드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이 일대에 ‘족발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6·25전쟁 직후인 50년대. 북한 출신들이 한두 집씩 모여들어 족발집을 내 손님을 끌었고, 이후 인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지는 각종 운동경기에 참석했던 관람객들이 단골고객으로 자리잡았다》

서울 중구 장충동에서 41년째 족발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는 전숙렬 할머니(73)도 북한 출신. 평북 곽산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광복 후인 21세 때 남편과 함께 서울로 왔다. 처음에는 남대문시장에서 군복을 팔았으나 여의치 않아 6·25전쟁 후 이 곳에서 음식점을 열었다. 처음에는 빈대떡 만두 등 ‘이북음식’이 주종을 이뤘으나 술안주를 찾는 애주가들의 기호에 맞추다 보니 차츰 ‘족발’을 특화상품으로 개발하게 됐다.

“어린 시절 만주에서 살았을 때 부모님이 돼지다리를 삶아 주었는데 너무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났지. 그래서 ‘돼지 족발’을 팔면 손님들도 좋아하고 수입도 짭짤할 것으로 생각했어.”

40세가 되던 해 동고동락하던 남편이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자 전 할머니는 3남2녀인 5남매를 혼자힘으로 키워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잠시 다른 사업을 하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었던 전 할머니는 “한 우물만 파야 돼”라며 어려웠던 당시를 회고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전 할머니가 지금의 자리에 현재의 ‘뚱뚱이 할머니집’이란 간판을 내건 것은 19년 전의 일이다. ‘뚱뚱이’란 이름은 자신의 ‘든든한’ 체격을 보고 단골 손님들이 붙여준 별명.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왔던 어린 소년이 대학생과 중년 아저씨가 되어서도 이 곳을 다시 찾을 때 전 할머니는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라며 뿌듯해했다. 요즘은 장충동 족발의 명성을 전해들은 일본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는 후문.

호탕한 웃음에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그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다름 아닌 ‘족발 제조법’. “족발을 삶을 때 시간을 잘 맞춰야 해. 너무 익혀도 안 되고, 덜 익혀도 맛이 떨어지지. 더 알려고 하지 마.” ‘족발거리’의 산 증인은 또 있다. 20여년 전부터 어머니 전박숙씨의 사업을 ‘가업(家業)’으로 물려받은 ‘장충동 할머니집’의 사장 임철웅씨(60). 그는 91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전면에 나서 장충동 족발의 명성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임씨는 “처음에는 술안주로만 팔렸지만 이젠 젊은 세대도 즐겨 찾는 음식으로 자리잡았다”며 “장충동의 명성에 걸맞게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사들도 많이 찾고 있다”고 자랑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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