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사건'판결 파장]"검찰 꿰맞추기 수사 마침내 입증"

  • 입력 2000년 11월 9일 18시 49분


“결국 두 사람에 대한 검찰의 기소 내용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두 사람은 무죄….”

9일 오전 10시 50분 서울지법 319호 법정. 재판장인 김대휘(金大彙)부장판사가 이형자(李馨子) 영기(英基)씨 자매에게 옷로비의혹사건 청문회 위증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는 순간 방청석에서는 이씨 측근 10여명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반면 김부장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는 동안 지그시 눈을 감고 경청하던 서울지검 박준선(朴俊宣)검사는 아무 말 없이 검사석을 떠났다.

검찰의 ‘최고 정예 수사팀’임을 자랑하는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부가 ‘급조된’ 최병모(崔炳模)특별검사팀에 ‘완패’했음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의미와 파장〓 재판부는 이 사건이 검찰의 주장처럼 이형자씨의 ‘실체 없는 자작극’이 아니며 라스포사 정일순(鄭日順)사장이 이씨에게 ‘옷값 대납을 요구’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검찰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본 정씨에 대해 “진술의 일관성도 없고 온갖 변명을 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에 대해 여전히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통렬하게 공박하며 특검의 수사 결과를 대부분 수용했다.

항소심과 상고심이 남아 있으나 이번 판결은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도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한편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특검제 상설화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검은 99년 5월28일 수사에 착수한 지 6일만에, 대검은 특검 수사결과 발표 후 10일만에 연정희(延貞姬)씨 등 3명을 기소해 졸속 수사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부장판사는 “검찰이 물증은 없는 상황에서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자 ‘검찰총장 부인이 설마 로비와 관련됐을까’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그러나 정씨가 이씨에게 전화를 건 통화 내용은 수사 초기에 확인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부장판사는 그러나 “우리는 옷로비사건 자체가 아니라 국회 위증 혐의에 대해 판단했으며 옷로비 의혹은 그야말로 의혹으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판결로 한동안 잠잠했던 사건의 의혹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김부장판사는 “연씨가 당시 옷값을 누군가가 대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제3자 뇌물취득혐의를 생각해 볼 수 있으나 특검과 검찰 수사에서 아무런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련자 반응〓이번 판결에 대해 신승남(愼承男)대검 차장은 “아직 1심이며 진실은 상고심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대검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지검 공안부 박만(朴滿)부장검사는 “재판부가 정씨의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이씨의 주장만 100% 믿은 결과”라며 “판결을 납득할 수 없으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최병모특별검사는 측근에게 “상쾌한 기분이다”고 말했다는 전언이다.특별수사관으로 일했던 조광희(趙光熙)변호사는 “법률가의 법과 양심에 따라 드러난 증거를 판단한 당연한 판결”이라고 말했다.선고가 끝난 뒤 이씨측 인사들은 감사 기도를 했지만 정씨와 연씨, 배정숙(裵貞淑)씨는 “항소하겠다”며 서둘러 법정을 떠났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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