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유귀훈/역사 쓴다는 자세로 社史 만들자

  • 입력 2000년 11월 14일 17시 17분


국내외에서 많은 사사(社史)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종류도 기업을 알리는 팜플렛 수준에서부터 창업 100년을 기념하는 상당한 분량의 사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국내의 사사는 외국의 사사에 비해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경향이 있다.

이것이 역사의 기록을 중시하는 자세에서 나온 것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한 사사도 '상품'으로 본다면 다른 회사보다 더 좋게 만드려는 경쟁심리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히 비싼 것을 가져야 우월감을 갖고, 그래서 겉포장을 최고급으로 하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허례허식이 사사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사사를 만드는 첫째 목적은 수많은 역경을 헤치고 지금까지 성장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과 역사적 경험, 즉 '역사의 교훈'을 후대에 전하는 데 있다. 이는 직원들에게 자긍심과 연대감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외부 독자에게도 기업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나온 고난의 역사를 당당하게 서술한 사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영상의 실수나 판단착오는 감추고 오로지 자랑거리만 나열하고 더욱이 아전인수식의 해석까지 덧붙인 사사가 흔하다.

사사는 역사적 논핀TUS 이다. 논픽션의 생명은 사실성과 객관성에 있다. 지금처럼 화려한 포장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사사는 사사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는 커녕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기업의 홍보책자라는 인식을 갖게 할 뿐이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역사 기록의 목적과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에 있지만 무엇이든 서두르는 우리 사회의 조급증과도 무관하지 않다. 문학작품과 달리 사사는 반드시 과거의 역사적 자료를 찾아 기억 속에 존재하는 역사를 서술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사료관리가 엉망인 상태에서는 자료를 찾는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사사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사사의 진정한 가치는 역사의 기록이다. 역사의 기록에 충실하면 홍보는 덤으로 따라온다. 기업의 오랜 역사는 그 자체가 홍보다.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온 강한 생명력이 자연스럽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유귀훈(기업사 작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