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는 일은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다. 아이들은 좀처럼 일어나질 못한 채 짜증을 내고 투덜댄다. 아이들을 깨우노라면 나도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게 된다. 아침은 그렇게 괴롭게 시작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다가 문득 ‘독립투사’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독립투사로 생각하게 되자 새롭게 이해되는 것이 많았다. 그렇게 보니 아이들이 갖고 있는 가장 강렬한 욕구는 ‘독립’이었다.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 간섭과 억압을 당하지 않는 주권을 확립하려는 바람이야말로 가장 강렬할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욕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이들이 갖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욕구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것이었던가.
▼일단 인정하니 이해폭 넓어져▼
P군은 어른들에 대한 반감이 유난히 컸다. 나에게 말할 때도 얼굴을 돌리고 빈정대는 투로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친구나 동생들한테는 특별한 친화력을 발휘해 분위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있다. P군이 얼굴을 돌린 채 빈정대는 투로 아이들을 대변하며 내게 대들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분노와 낭패감을 느꼈다. 그러나 아이들을 독립투사로 보면서 그의 능력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의 마음도 평안해졌다.
O군은 나이와 힘으로는 우리 집의 맏이지만 맏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 국토횡단여행을 통해 그는 달라졌다. 여행은 조장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조장들은 주저앉는 조원들을 부축하고 들쳐업으면서 목적지까지 도달한 마지막 날에야 자신들도 숨어서 많이 울었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O군은 그때 조장은 아니었지만 그런 조장이 멋있게 보였던 것 같다.
어쨌든 O군이 아이들에게 힘을 행사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P군의 친화력이 합쳐지고, 나의 시각이 변하면서 우리 집에서의 ‘아이들의 나라’는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일상생활 전반과 중요한 가족회의 안건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처리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 중에서도 ‘들꽃 피는 학교’의 존재 의의인 상처받고 마음이 꽁꽁 닫힌 아이들의 마음을 녹이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오늘도 새롭게 열여섯살짜리 아이가 새 식구로 들어온다. 집을 나와 거리생활을 한 지 벌써 1년이 넘은 아이다. 소년원에도 다녀왔고 약간의 자폐증세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밤 아이들은 새로 들어온 친구를 둘러싸고 우리 부부 몰래 밤을 새울 것이다. 과자봉지를 뜯어놓고 화가 날 때는 욕을 해대면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리라. ‘자신들의 나라’를 갖지 못한 채 서럽게 살아온 아이는 오늘 밤 ‘자신의 나라’를 보고 마음을 풀 것이다.
입시철이다. 많은 아이들이 입시의 부담과 좌절을 맛봐야 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값싼 방법으로 아이들을 위로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이들의 상처와 좌절의 근원을 살펴보고 우리 사회에서 왜 ‘아이들 나라의 주권’이 보장돼야 하는지를 살펴봐야 할 때다. 가정에서도 당당한 주체로 인정되고 학교에서는 학생자치회와 동아리 활동이 실제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지역사회에서는 다양한 청소년 모임과 활동이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과 다양한 아르바이트의 기회가 마련돼 경제적 자립 욕구도 존중돼야 한다.
▼가정-학교서 주체로 인정해야▼
우리 아이들이 ‘독립투사’로서 존중되고 그들의 여러 가지 행동이 ‘자신들의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으로 인정돼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이 만든 ‘식민지’의 백성으로만 청소년 시절을 보내게 해서는 안된다.
김현수<목사·‘들꽃 피는 학교’대표>
◇김현수목사 이력
경기 안산시의 청소년 공동체인 ‘들꽃 피는 마을’에서 대안학교인 ‘들꽃 피는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33명의 청소년이 9명의 교사들의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대부분 가정이 해체돼 거리생활을 하다가 ‘들꽃 피는 마을’에 들어갔다. 031―486―8836∼8, 인터넷 홈페이지 http://www.wahah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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