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은 주가조작으로 인한 손해액의 산정기준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세종하이테크와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된 유사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오세빈·吳世彬부장판사)는 5일 유모씨 등 21명이 ㈜엘지화재해상보험과 제일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판결을 뒤엎고 “제일은행 등은 유씨 등에게 2억1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종합주가지수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던 97년 당시 대한방직의 주가가 2배로 뛰었고 곧이어 다른 주가보다 큰 폭으로 하락한 점, 작전이 끝난 시기와 대한방직의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시기가 같은 점 등으로 볼 때 투자자들의 손해는 주가조작 때문이라는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손해배상액은 유씨 등이 주식을 매수한 가격과 주가조작이 없었을 경우 형성됐을 가격과의 차액을 기준으로 한다”며 “그 가격을 선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지만 부득이 주가조작 기간을 제외한 기간 동안의 최고 주가로 계산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계산법을 적용할 경우 유씨 등의 손해액은 4억2400여만원으로 계산된다는 것.
그러나 재판부는 “주주들이 주가가 이상 급등하는데도 기업가치 등을 살피지 않고 투자한 책임도 있는 만큼 금융기관의 배상액은 50%로 한정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소송을 대리한 김창문(金昌文)변호사는 “주가조작에 대해 개인 펀드매니저가 아닌 이들이 소속된 금융기관의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로 주가조작이 횡행한 우리나라 기업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면서도 “금융기관의 책임을 50%밖에 인정하지 않은 만큼 원고들과 의논해 상고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유씨 등은 97년 1월말 7만3000원 수준이던 대한방직 주가가 11월말 14만2000원까지 상승한 뒤 곧이어 폭락하는 바람에 모두 13억여원의 손해를 보게 되자 나름대로의 계산에 의해 8억5600여만원의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는 “주가가 하락한 것은 당시 외환위기 때문이라고 보이므로 투자자들의 피해와 주가조작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