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시립 공중화장실 사치 논란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9시 00분


《‘수십만원짜리 비데가 설치된 변기, 자동출입문, 핸드드라이어,칸마다 부착된 거울과 기저귀교환대까지….’어느특급호텔의 화장실 풍경이 아니다. 2002년 월드컵대회를앞두고 서울시가 작년부터 시내 곳곳에 건립중인 시범공중화장실 내부의 모습이다. 서울시가 각종 국제행사에 대비, ‘화장실 문화수준 향상’을 위해 추진중인 시범공중화장실 건립사업에 ‘예산낭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깨끗하고 실용적인 공중화장실 가꾸기 차원을 넘어 거액을 들여 특급호텔에 버금가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시설로 치장해 ‘지나치다’는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

두 달 전 송파구 잠실운동장 인근 도로에 60여평 규모로 건립된 한 공중화장실. 평당 680만원의 건축비가 소요된 이곳 여성화장실의 내부 인테리어는 여느 특급호텔 못지 않다. 대형거울, 에티켓벨, 칸마다 설치된 그림액자는 물론 핸드드라이어까지 갖춘 한편 ‘일을 보며’ 클래식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스피커까지 설치돼 있다. 또 화장실 옆에는 30여평 규모의 카페 등 휴게공간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이곳을 찾은 26일 오후 7시부터 1시간동안 화장실을 이용하는 여성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인근에 잠시 쉬기 위해 차를 대는 몇 명의 택시운전사들이 전부. 택시운전사 김진호씨(40)는 “버스정류장과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이라 일반시민보다는 택시운전사들이 주이용객”이라며 “시설은 좋지만 이런 외진 곳에 거액을 들여 공중화장실을 짓는 것은 분명 과잉투자”라고 꼬집었다. 두 달 전 서대문구 신촌기차역 앞에 들어선 시범공중화장실의 경우도 마찬가지. 통유리로 된 천장, 고급스러운 타일외벽, 세면대 앞 대형거울 외에 칸마다 별도의 거울과 기저귀교환대를 설치하고 세면대는 손만 내밀면 자동으로 물이 나오도록 돼 있다. 또 자동으로 변기커버를 갈아주는 장치와 곳곳에 스피커를 설치,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평당 790만원의 ‘혈세’가 들어간 이곳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대학생 최해영씨(20)는 “10, 20대들이 주로 모이는 이곳에 칸마다 기저귀교환대를 설치하거나 호화마감재를 사용한 것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서울시가 건립한 시범공중화장실은 신촌, 길동생태공원, 연세대 앞 등 8곳이며 내년까지 추가로 17곳이 건립될 예정이다. 평당 건축비는 680∼800만원으로 총 소요예산은 67억원선. 서울시내 아파트의 평당 건축비가 800여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지하정화조 설치 및 각종 위생설비, 이전비 등을 감안한 실제 평당단가로 따져볼 때 결코 지나치지 않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경기불황시기에 각종 고급시설이 즐비한 공중화장실 건립에 시민의 혈세를 과다하게 낭비하고 있다는 여론도 만만찮다. 화장실문화시민연대 표혜령사무국장은 “공중화장실은 깨끗하고 견고하게 지어져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화려한 내부에 비데나 에티켓벨 등 일부 불필요한 시설을 갖춰놓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