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 또 인명사고…보신각 타종구경 어린이 압사

  • 입력 2001년 1월 2일 18시 34분


지난해 12월31일밤 서울 종로구 관철동 보신각 앞에서 ‘제야의 종’ 타종행사를 보러 나온 네살난 남자어린이가 인파에 깔려 숨졌다. 이는 안전불감증이 생활화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사고로 지적되고 있다.

▽불가피한 사고였나〓이날 보신각 주변 종로1가 네거리의 가로 150m 세로 60m의 공간과 골목 등에 무려 8만여명(경찰추산)의 인파가 몰려 물결을 이루듯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대혼잡을 빚었다.

사고현장 주변에는 경찰 24개 중대 2500여명이 보신각과 지하철역 입구를 사방으로 에워싸는 식으로 배치됐다. 경찰은 이날 워낙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인파를 일일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사고가 일어난 사실도 다음날인 1일 아침에야 알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 인명사고가 났는데도 경찰이 전혀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우며 군중 사이사이에 경찰력을 배치해 밀려오는 인파를 중간중간 통제했어야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일 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유족들은 “아이들끼리만 행사장에 보낸 부모가 잘못”이라며 통곡하면서도 “사고당일 사람보다는 보신각 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었나 할 정도로 인파통제에 무심했던 경찰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정재희(鄭載喜·49·서울산업대 안전공학과 교수)사무총장은 “우리의 경우 크고 작은 행사때마다 발생 가능한 위험요소들에 대한 사전대비가 경찰이나 시민 모두 부족하다”며 “공공기관이든 민간단체든 대형 행사를 주최하는 쪽에서 정교한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게 기본적인 관행으로 정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내용〓지난해 12월31일 밤 11시40분경 보신각앞 종각 지하철역 부근 도로에서 김모씨(32·버스정비사·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둘째아들 용민(容民·4)군이 형(6)과 함께 사촌누나 김모양(16·고교 1년)을 따라 타종 행사를 구경하러 나왔다가 인파에 밀려 넘어지면서 깔려 질식사했다.

김양은 경찰조사에서 “두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뒤에서 밀치기 시작, 용민이 손을 놓치면서 함께 쓰러졌다”며 “그 위로 10여명의 다른 사람들이 쓰러지면서 덮쳤고 잠시 뒤 정신을 차려보니 용민이가 땅바닥에서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말했다.

잠시후 현장에 대기중이던 119구조대가 도착, 용민군을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질식사한 뒤였다. 한편 김양을 비롯, 다른 시민 9명도 부상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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