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정부는 단칼에 시험중심의 대학입시를 폐지했고, 젊은층 중심으로 ‘교사 개혁’을 단행했다. 입시를 내신으로, 수능을 등급제로 바꾸고, 교사의 정년단축을 꾀했다. 특히, 정년단축에 대한 교사들의 격렬한 반발이 있었지만, 교육을 젊게 만든다는 정부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말많던 교육개혁은 그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인가? ‘뭔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입시는 사실상 대선과 총선보다도 비중이 큰 국가적 행사이며, 자녀와 가족의 사활을 결정하는 중대 사건이다. 선거는 정치인들의 게임인 반면, 대학입시는 자녀의 일생과 입신, 내 가족의 명예와 번영에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입시철 일간지 사회면 톱기사가 대학입시로 채워질 리 없고 학부모들이 영하의 날씨를 마다하지 않고 시험장 밖에서 서성대지도 않을 것이다. 우스개 얘기일지 몰라도 입시제도가 무너지면 국가의 기강이 동시에 무너지는 것이 한국사회다. 한국에서 입시제도는 국가와 사회를 이끌어갈 미래의 인재를 선발하는 기준이며, ‘품위있는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공평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대학교육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일종의 신분보증서와도 같다.
이런 관행이 결코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뿌리깊은 이런 정서와 사회적 인식이 존재하는 한 입시제도를 철폐했다고 입시경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험은 없어졌지만, 입시경쟁은 전방위로 확대됐다. 실제로, 내신중심제도는 입시를 3년으로 연장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과외열풍도 전략과목에서 전과목으로 번졌다. 유례없이 쉬웠던 수능시험에서 실수로 한 문제를 틀린 3년 우등생은 일생의 꿈을 접어야했다. 정당한 평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학교별 학력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 평등주의로 특수목적고와 지방명문고 학생들은 합리적 경쟁의 기회를 빼앗겼으며, 심지어 외국으로의 이탈마저 가속화하고 있다. 아마 지도층 인사 4명 중 1명 꼴로 자녀를 외국에 보냈을 것이다. 청소년 유학의 위험도 고려했겠지만, 그래도 불공평하고 불안한 한국의 교육현실에 방치해두는 것보다는 득이 많다는 인식이 서민들에게까지 퍼지게 됐다.
고등학교 교실은 뒤숭숭하다. 전과목 시험과 수행평가로 가중된 학업부담에 종일 매달리는 학생들과 아예 저질 성인문화에 일찌감치 몸을 맡기는 학생들로 나누어졌는데, 교사들은 매년 바뀌는 입시와 평가기준 때문에 곤혹스러울 뿐이다. 교과서의 형식과 내용은 20년 전과 대동소이하고, 문맥이 닿지 않는 개념과 용어가 많아서 내가 읽어봐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수행평가에 학부모가 매달리고 대행업소가 출현했으니 본래의 취지는 심각하게 왜곡됐다. 학부모들은 밤늦게 지친 몸으로 학교 문을 빠져 나오는 자녀를 데리고 다시 과외선생에게로 달려가야 한다. 교사들은 자신들을 ‘능력없는 사람’으로 매도했던 교사 개혁의 후유증으로 사기를 잃은 지 오래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이 지경으로 몰고갔음을 개혁주체들은 알기나 하는 것일까?
개혁의 칼날을 휘두른 그 멋진 역할은 정부의 것이었던 반면, 후유증은 국민의 몫이 되었다. 교육개혁은 그렇게 완료됐으며, 정부의 관심은 벌써 다른 영역으로 이동했다. 정부가 사전에 정책의 부작용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그것을 치유할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두 가지가 급하다. 우선, ‘시험 절대불가’ 원칙을 폐기하고 대학에 학생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할 것과 교사들의 열의와 자존심 회복을 위해 민간대기업 수준으로 처우를 개선할 것. 다른 것은 무너질지라도, 교육만은 붙잡고 있어야 한다.
송호근<서울대 교수·사회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