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산업 정문술대표 사임의 변(전문)

  • 입력 2001년 1월 4일 17시 36분


저의 미래산업 이사직 사임을 결정하게 될 이사회 개최를 하루 앞둔 3일 낮, 저는 두 아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아비의 결심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경영권 세습은 결코 않겠노라고 공언해 왔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제 생각이고 아들들의 속내는 다를 수 있다는, 경영권은 세속의 기준으로 보면 가장 큰 유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들은 너무나 고맙게도 다시 한번 저의 생각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경영권이라는 유산 보다 몇 곱절 더 큰 유산인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결단은 우리나라에도 중요한 것이라고 봅니다”라는 답이었습니다.

“이만하면 자식농사도 성공했구나”하는 생각에 흐뭇해졌습니다.

저에게는 두아들과 세딸이 있습니다. 이들은 제가 초기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을 결심했을 때에도 아비의 뜻을 따르겠다고 한 놈들입니다.

저는 사업을 거창한 뜻을 품고 시작하지는 못했습니다. 18년간 몸담았던 공직에서 강제 해직을 당한 후에 먹고 살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사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그러나 시작은 그렇게 보잘 것 없었지만 끝 마무리만큼은 누구보다 멋지게 하겠노라고 다짐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멋진 끝맺음은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경영권을 종업원들에게 물려주겠다고 다짐해 왔습니다.

오랜 생각 끝에 저는 지금이 그 때라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경제 위기론, 벤처 위기론에 빠져있고, 미래산업 주가도 형편 없이 떨어져 있지만 오히려 그 때가 후임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산업은 2년 전부터 사실상 전문경영인 체제로 움직여 왔습니다. 미래산업의 경영진 누구도 미래산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준비를 해 왔습니다. 그런 만큼 미래산업의 미래는 걱정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한때 가족동반 자살까지 결심했던 돈에 한이 맺힌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지긋지긋한 돈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싶었고 돈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을 쓰는 모형을 만드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저는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다른 일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돈을 버는 일을 했습니다만, 이제부터는 돈을 쓰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그저 그렇게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쓰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생산적 자선, 생산적 기부 모델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일회적이나 소모적 자선, 기부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자선, 기부 시스템을 만들고자 합니다.

미래산업에도 제가 기여할 부분이 있다면 계속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배후에서 사실상 모든 것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형태가 아니라 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말 뜻 그대로의 자문 역할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CEO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이미 닦아 놓은 길을 관리하고 추수하는데 주력해 달라는 것 입니다. 리더란 코치의 입장으로 자기를 죽여야 하는 자리입니다.

사업은 어찌보면 심플한 것입니다. 착한 기업이 잘 된다,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착한 기업이란 윤리적인 것을 말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합니다.

같이 잘 살아야 합니다. 초등학교 바른생활에서 배운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상도의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일시적 두각은 나타낼지 모르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것을 봤습니다. 착한 기업이 되고자 한 것이 그동안의 미래산업의 저력이자 힘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미래산업과 저에게 관심과 기대, 격려와 질책을 아끼지 않으신 선후배, 동료, 주주 여러분, 그리고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또한 제가 해야 할 일을 미리 준비하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2000.1.4

정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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