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범죄 '뜀박질'…경찰수사 '제자리'

  • 입력 2001년 1월 6일 18시 54분


범죄분야도 ‘글로벌 시대’다. 외국인의 왕래나 거주가 늘어나면서 그들의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마약과 경제범죄 등에서는 다국적 범죄 양상을 띠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국내 수사기관, 특히 경찰력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범죄사실이 명백한데도 언어소통 등의 문제로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채 놓아주기 일쑤다. 범죄수법은 점점 정교해지는데 전문인력은 태부족이다.

▽외국인 범죄사례〓지난해 11월 27일 오후 10시 서울 강서경찰서 형사계.

4시간 전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2청사에서 출국 수속을 밟던 박모씨(26)의 손가방을 빼앗아 달아났던 페루인 카를로스 알바라도(20)가 붙잡혀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는 범죄 사실을 추궁하는 경찰관들에게 영어를 모른다는 뜻으로 ‘노 잉글리시’(no English)만 연발했다. 영어에 지친 경찰관들은 결국 페루에서 살다온 한국인을 부랴부랴 찾아내 부른 뒤에야 조사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지난해 9월말 서울 구로경찰서는 압둘 와히드(33·무역상) 등 파키스탄인 5명이 다른 파키스탄인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증거불충분’으로 영장을 기각했다.

불구속 상태의 피의자들을 보강수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모두 출국해버렸다. 결국 3개월 간의 조사 끝에 당초 피의자 5명 중 겨우 1명만 구속할 수 있었다.

▽외국인 수사의 문제점〓수사관들에게 가장 어려운 점이 의사소통 문제.

경찰이 외국인 범죄를 다루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주한 외국대사관과 각 지방경찰청 통역센터가 있다. 하지만 대사관의 경우는 자국민 보호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통역센터는 인력난 때문에 경찰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수사관들은 이들 민간 통역요원들에게도 어느 정도 전문성이 필요한데 이것이 부족해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일선경찰관은 “민간 통역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피해액이나 공범 등을 추가로 알아내지 못해 사건이 축소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외국인 사건의 통역을 담당했던 강모씨(23·여·한국외국어대 4년)도 “범죄용어를 피의자 피해자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워 수사에 도움이 될 만큼 진술을 유도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전담분야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

피의자가 한국어를 할 수 있으면 형사계, 한국어를 못하면 외사계로 보낸다는 식으로 원시적인 업무분담이 이뤄지고 있다. 형사계 경찰관들은 “외국인 수사를 전담한다는 외사계보다 우리가 외국인 사건을 더 많이 담당한다”며 투덜거리고 외사계측에서는 “단순 범죄는 형사계가 맡아야 한다”고 반박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외국인 수사의 전문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특수 외국어 가능자에 대한 특채를 확대하고 형사계와 외사계간의 효율적인 업무분담을 깊이 있게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범죄 증가추세〓법무부에 따르면 98년 7만4100여명 수준이던 산업연수생 입국자가 지난해의 경우 11월까지 11만7600여명으로 늘어났다.

문화관광부가 파악한 외국인 관광객 수도 99년 466만여명에서 지난해는 14.8%가 늘어 535만여명이었다.

사람이 늘어난 만큼 범죄도 늘었다.

대검찰청 형사과에 따르면 외국인 범죄는 지난해의 경우 3·4분기까지 3635건으로 98년 총외국인 범죄건수 3645건에 육박하고 있다. 범죄 유형도 동남아인들의 절도 폭력 등 단순범죄에서 나이지리아인 일본인들에 의한 사기범죄로 확대되고 있다.

<이완배·최호원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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