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는 민심의 바탕엔 당연히 ‘불안’이 깔려있다. 내 살림, 나라 살림 걱정 때문이다. 21세기 벽두의 국가적 과제가 ‘경제살리기’라고 목청을 높인 지 도대체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토록 철저히 ‘민생 죽이기’의 싸움판만 벌인다는 말인가.
각계각층이 쏟아내는 분노의 목소리, 그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처방을 정리해본다.》
▼고재청 전 국회부의장▼
하루빨리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여야가 막말을 하면서 막가고 있다. 적국(敵國)이라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누구를 위해 정치가 존재하는지 근본부터 깊이 생각해야 한다. 더 힘이 있는 정부 여당이 먼저 풀어야 한다. 세를 불리고 정국주도권을 쥐면 뭐하나.
국민을 위해 옳은 일을 하지 않으면 정국주도권을 잡아도 소용이 없다. 경제문제 구조조정 남북협력문제 등 산적한 국가적 과제를 당리당략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이견은 당연한 일이다.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려 하고 일리가 있는 부분은 수용하는 상생(相生)의 정치가 절실한 시기다.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회의원 꿔주기’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지 단적으로 보여 준 정치 코미디의 결정판이다. 국민의 정치불신이 극에 달했고 우리 정치는 국가 경영을 위한 메커니즘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구 안기부 자금 정치권 유입은 직접적으로는 과거 YS정권의 도덕적 불감증을 드러낸 사건이다. 그러나 현 정권 또한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철저한 조사를 통한 사실 규명은 물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병행돼야 한다. 지금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하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객관적이고 대승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거국 내각을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김효성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여야 모두 민생을 외면하는 정치를 하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올 들어 조금 나아지려나 기대했으나 아직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야 정치인 모두에 대해 신물이 날 지경인지 요즘 기업인들은 더 이상 성토도 하지 않는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도 이제 오래 된 ‘노래’가 되었다. 대선이 2년여 남았는데 벌써부터 대권 다툼을 염두에 둔 정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계 등 원로들이 모여 국가적인 난국을 풀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 정치권에 건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서준식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이 민생과 개혁의 발목을 잡는 주범이란 얘기는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국회에서의 국가인권위원회법 부정부패방지기본법 국가보안법개폐 등 3대 개혁입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며 11일째 노상 단식농성 중이다. 인권운동가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쓰러져가도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얽매인 싸움질에만 매달려 있는 지금의 현실을 보라. 국민의 혈세로 월급은 잘 나오니 세월만 보내는 건가. 5일에는 단식농성단 대표들이 국회를 방문해 민주당 대표를 면담하려 했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무엇이 그리 바쁜가. 국민을 위한 국회가 되어 달라.
▼송두환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정치인들이 해답 없는 정쟁에만 매달려 있기에는 새해 국회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우선 국가인권위원회법과 부정부패방지기본법 제정, 국가보안법 개폐 등 3대 개혁입법의 조속한 처리가 시급하다. 구조조정이라는 큰 방향은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업문제에 대한 대책 등 국가적으로 긴급한 현안이 쌓여있다. 우리 정치권이 정쟁으로 인해 본연의 입법기능을 뒷전으로 미루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2001년 새해가 밝자마자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에 대한 정치공방으로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검찰에 맡겨라. 그리고 국회는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올 때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위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해봐야 한다. 너무 감정들이 앞서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현재의 여야 구도는 국민이 정해준 것이다. ‘의원 꿔주기’처럼 국민이 투표로 결정해 놓은 것을 인위적으로 바꾸고, 또 이를 정당화하려니까 자꾸 무리수가 생긴다. 요즘 정치엔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없다.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총재가 대통령으로 있는데 안기부 예산이 선거자금으로 유입된 사실을 알게 됐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또 김대통령도 만약 야당총재라면 이 시점에서 옛날 일을 들춰내는데 대해 가만히 있겠느냐. 이 같은 역지사지가 없다면 국민은 여야 모두에 대해 실망할 것이다. 큰 차원의 이성을 되찾기 바란다.
▼이민화 메디슨 회장▼
지금 경제상황은 어렵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일반인들은 정치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치상황을 다 알지는 못한다. 언론을 통해 접하는 뉴스들은 일이 풀려간다는 느낌을 주지 못해 안타깝다. 이런 시기에 올들어 여야 영수회담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논의가 진행된 것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도 퍽 반가웠다.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한다는 것은 문제해결에 절반 이상 다가간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과가 기대에 못미쳐 모두가 실망이 크다. 기업인들이 웃을 수 있는 시기가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
▼작가 최인호▼
아프리카의 초식동물들은 앞에서 달리기 시작하면 자신이 왜 달리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따라 달린다고 한다. 요즘 정치를 보면 그런 식이다.
최근 정치가 어지러워진 것은 각 당 지도부가 대권에만 욕심을 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야가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대권을 위해서만 모든 정치적 힘을 모으다 보니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의원 꿔주기’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대통령의 임기 절반만 넘겨도 벌써 대권 얘기가 나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고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다보면 대권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대권을 잡는 것이 어떻게 테크닉, 즉 술수로만 가능하겠는가. 지금처럼 정치가 대권을 위한 것처럼 정치인들이 행동한다면 그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이유를 묻고 싶다.
▼곽수일 서울대 경영대 교수▼
정치권은 하루빨리 소모적인 ‘정쟁’을 그만두고 경제회복에 나서야 한다. 불과 4개월 전인 지난해 3·4분기까지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등 국내 경제지표가 양호했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는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기업들은 설비투자 규모를 크게 줄이고 있으며 국민은 급속하게 소비를 줄이고 있다. 특히 이 같은 경제 급랭의 바탕에 불안심리가 팽배해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당리당략에 치우쳐 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정치권은 이 같은 불안심리를 부채질하며 나쁜 의미에서의 ‘승수(乘數)효과’를 낳고 있다. 상생의 정치로 정치불안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경제는 계속 곤두박질칠 것이다. 하루가 급하다. 정치권은 더 이상 경제위기를 가중시키는 잘못을 범하지 말고 국민의 따가운 눈총과 민심을 직시하기 바란다.
▼이용훈 변호사·전 대법관▼
여야 정치인들이 상식과 원칙에 따르지 않고 이에 어긋난 일을 하려니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다. 모든 일은 원칙에 입각해 정도(正道)로 해결해야 한다. 특히 국회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정치의 중요한 원칙을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은 대화와 타협은커녕 여야 모두 책략에 몰두하고 있고 이렇게 만들어진 책략에 따라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여야가 서로 타협하고 대화해서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최대공약수’를 찾아내 실현해야 한다. 마치 전쟁이나 작전을 하는 것처럼 정치를 해서는 되는 일이 없고 국민만 불안하고 불편하게 할 뿐이다.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사건’은 비록 당시는 아니지만 한때 선거관리를 맡았던 사람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한다.
▼나우누리 ID:그림과 숲▼
‘의원 꿔주기’에 ‘안기부자금 선거 유용’에…. 요즘 정치를 보고 있노라면 한심하다는 생각뿐이다. 더 화나는 것은 그런 짓을 하고 나서도 정치인들이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 보기에, 아니 자기 가족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나.
도대체 안기부 자금을 선거에 쓰고도 반성은커녕 “정부의 탄압”이라고 큰소리치고, ‘의원 꿔주기’라는 세계적인 코미디를 하고도 “야당이 협조를 안했기 때문”이라고 오히려 대드는 이런 한심한 나라가 어디 있나. 잘못에 대해 솔직히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는 정치를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하이텔 ID:kkskmc▼
여야 정치인 모두 이 땅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국민은 경제가 어려워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데 정치인들에게는 국민 고통이 보이지도 않는지 매일 싸움뿐이다. 정치인들에게 ‘민생’이란 아예 관심 밖인 것 같다. 정말 지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