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서 윤락녀로…' 구소련출신 5명 속아서 입국

  • 입력 2001년 1월 7일 19시 17분


7일 오전 11시경 대전 북부경찰서 형사계 사무실. 키가 170㎝가 넘는 미모의 구 소련권 여성 5명이 밤새 계속된 조사 탓인지 초췌한 모습으로 울먹이고 있었다.

“하루 2, 3차례씩 한달 이상 몸을 팔았는데 돈은 한푼도 받지 못했어요.”

키르기스스탄의 모 의과대학(6년제)에서 비뇨기학을 전공한 뒤 1년 동안 인턴 생활을 하다 하루아침에 윤락녀로 전락한 에리나씨(29·가명).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 취업여성 모집’이라는 현지 신문광고를 보고 전화했다가 ‘월 1000달러를 보장한다’는 말에 솔깃해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후배 루디노씨(24·가명)와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경제사정이 어려워 인턴 월급을 한푼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에 가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29일 현지에서 모집된 또 다른 여성 3명과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모씨(36·택시운전사·대전 서구 가장동) 등 일당 3명에 의해 곧바로 대전으로 ‘호송’돼 중구 목동 13평짜리 연립주택에 ‘수용’됐다.

의사 대학생 유치원교사 등 고학력자인 이들은 댄서 취업이라는 약속과는 달리 첫날부터 대전시내 숙박업소에 승용차로 실려가 윤락을 강요당했다. 식사는 빵이 전부였고 운이 좋으면 삶은 계란을 먹을 수 있었다. “약속과 다르지 않느냐. 한달 후엔 돈을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거세게 항의도 해봤으나 여권과 비행기표를 이미 빼앗긴 상태여서 속수무책이었다. 더욱이 “우리는 한국의 마피아다. 러시아처럼 경찰과 연결돼 있어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협박 때문에 두려움에 떨며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모집책(수배 중)에게 1만5000달러를 주고 이들을 인계받아 윤락을 강요한 뒤 화대 2700만원을 가로챈 이씨를 구속하고 일당 2명과 윤락의 상대방 남자인 문모씨(39·변리사)를 불구속입건했다. 5명의 여성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인계돼 강제추방을 기다리고 있다.

<대전〓이기진기자>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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