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업무성과를 엄격히 따지는 미국식 평가제도를 도입하기 때문이다. 이 고과자료는 급여 승진 인사배치 퇴출기준 등으로 활용된다. 이에 따라 ‘연공서열’과 ‘집단주의’를 강조하던 한국식 기업문화가 실적이 강조되는 미국식 기업문화로 급변하고 있다.
▼관련기사▼ |
▼부하 11% 상사보다 고임금 ▼
이런 현상에 대해 경영학자들은 “기업문화의 유전자(DNA)가 바뀌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기업에 몰아치는 이 같은 바람은 앞으로 한국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적당히 봐주기’식이 퇴조하고 ‘깐깐하게 실적 따지기’가 뿌리를 내릴 것이란 전망이다.
본보가 최근 국내 5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14일 집계한 ‘기업들의 평가보상제도 변화’에 따르면 삼성물산 LG전자 SK㈜ 등 조사대상 기업의 86%가 연봉제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건설 현대상선 국민은행 대림산업 등 응답기업의 14%는 근속연수와 직급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임금 및 평가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중 70%가 ‘1년 이내에 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응답해 내년부터는 거의 모든 기업이 연봉제를 도입할 것으로 조사됐다.
동일직급내 임금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제일제당 한국IBM 등 9개 기업(20%)에서는 같은 과장급의 임금이 60% 이상의 차가 난다. 삼성물산 SK텔레콤 한화 등 7개 기업(15.6%)은 40∼60%, 두산 LG EDS 한국통신 등 11개 기업(24.4%)은 20∼40%, 현대자동차 신세계 농심 등 8개 기업(17.8%)은 10∼20%의 격차를 보였다.
제일제당 대우증권 삼성생명 등 응답기업의 66%가 ‘하위직이 상위직보다 임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응답해 ‘직급간 임금 역전 현상’이 이미 보편화됐다. 이들 기업중 직급간 임금역전 비율은 11.47%로 나타나 실제로 10명중 1명꼴로 부하가 상사보다 급여가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새평가기준 도입 크게 늘어▼
또 응답기업의 62.5%가 급여산정 기준에서 업적을 가장 중시한다고 답해 ‘태도’나 ‘능력’을 중시하던 한국기업의 인사평가 기준이 미국식 평가제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과거 승진심사에만 형식적으로 반영되던 ‘인사고과’가 급여와 승진, ‘퇴출’ 등 직장인의 모든 생활을 좌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취업희망자는 앞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종을 골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간판’만 노려 유명 대기업에 취업했다가 적성이 맞지 않는 업무를 맡아 실적이 나쁘면 낭패를 당하기 때문이다. 한편 일부 기업들은 평가기준의 검증절차나 노사간 합의 없이 미국식 평가제도를 무작정 도입하고 있어 신평가제도의 장점인 ‘공정성’과 ‘신뢰성’을 살리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61.9%의 기업이 평가기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필수적 장치인 실험적 평가기간도 없이 신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병기·박중현·하임숙기자>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