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시각장애인 점자블록 따라가기

  • 입력 2001년 1월 14일 20시 40분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 앞. 올해 침구사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입학상담차 이곳을 찾아온 시각장애인 윤봉덕씨(49·주부·송파구 방이동)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씨는 인근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에서 학교까지 1km 남짓한 거리가 ‘아슬아슬한 천리길’이나 다름없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인도에 설치된 점자블록을 지팡이로 분간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요. 또 곳곳에 불법주차된 차량과 입간판들까지…, 한마디로 ‘외줄타기 곡예’를 하는 심정입니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맹학교 앞. 올해 침구사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입학상담차 이곳을 찾아온 시각장애인 윤봉덕씨(49·주부·송파구 방이동)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씨는 인근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에서 학교까지 1km 남짓한 거리가 ‘아슬아슬한 천리길’이나 다름없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1년 전 갑자기 시력을 잃어 실의에 빠졌던 윤씨는 이날 어렵사리 용기를 내 학교를 찾아갈 결심으로 대문을 나섰다.

‘시각장애인이 많이 다니는 곳이니까 안내시설이 잘 돼 있을 거야.’ 그러나 윤씨의 이 같은 ‘기대’는 지하철역을 나서자마자 산산이 깨어졌다. 보통 요철로 된 점자블록을 지팡이로 더듬어 방향을 가늠하는데 나머지 인도마저 보도블록으로 깔아놓았기 때문. 점자블록이 훼손된 곳도 적잖았다. 10년 전 설치돼 곳곳이 깨어진 채 방치돼 있거나 인도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변색된 구간도 있었기 때문. 일반적으로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의 70%가 약시인 점을 고려해 구분이 잘 되도록 노란색 계통을 쓰기 마련. 윤씨는 “옆 보도블록과 구분이 힘들 정도로 색이 바래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선형블록이 깔려있어야 할 곳에 ‘길끊김이나 주의’를 경고하는 점형블록이 들어가 혼란을 주는 사례도 있었다. 윤씨는 “건널목이나 골목 어귀 등 인도가 끊기는 곳에 설치해야 할 점형블록이 아예 없는 곳이 많아 사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불법 주차 차량과 입간판 등 각종 장애물로 인한 문제가 심각했다. 점자블록만 믿고 가다간 건물 앞 주차차량이나 상품진열대에 부딪히기 일쑤. 윤씨는 이 날도 몇 걸음 떼기가 무섭게 점자블록을 가로막은 리어카와 차량들을 피해 가느라 진땀을 흘렸다. 실제로 며칠 전에는 집 앞 도로에서 점자블록을 따라가다가 운전자가 열어둔 승용차의 트렁크 문에 이마를 찧기도 했다. 이날 윤씨와 동행한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 기초재활팀 박상린씨(42)는 “위로 들린 리어카 손잡이에 목을 부딪히거나 이가 부러지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주차를 막기 위해 인도에 세워둔 구조물들이 큰 피해를 준다”고 말했다.

학교 앞 100여m의 진입로도 사정은 마찬가지. 심하게 훼손된 점자블록 곳곳에 차량들이 서 있었고 아예 전봇대가 가로막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40여분간의 ‘험난한 여정’ 끝에 학교 앞에 도착한 윤씨는 “횡단보도에 설치된 음향신호기도 제대로 작동이 안 돼 더 힘들었다”며 가쁜 숨을 골랐다. 서울맹학교의 한 관계자는 “이곳뿐만 아니라 시내 곳곳에 깔린 점자블록 대부분이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며 “새로운 시설을 만들기보다 기존 시설물의 유지관리에 신경을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 같은 실태에 대해 관할구청은 ‘예산부족’으로 상당기간 유지보수업무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해명. 종로구의 한 관계자는 “빠른 시일내 실태를 조사해서 훼손된 부분은 보수 등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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