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 동물식구 한파스케치]북극곰 "살맛 나네"

  • 입력 2001년 1월 17일 18시 50분


수십년만에 찾아온 강추위가 지속되면서 경기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 ‘동물식구’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북극곰과 시베리아 호랑이 등 ‘친한파(親寒派)’동물들은 모처럼의 강추위가 ‘꿀맛’같다.

이들은 허연 입김을 가득 뿜어내며 우리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등 왕성히 활동하면서 모처럼의 추위를 만끽하는 모습.

대공원측은 “여름철과 달리 식사도 남기지 않는 등 식욕이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식사량도 20%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어지간한 추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롱을 부리며 관람객을 반기던 바다사자는 그러나 유례없는 혹한에 몸살이 들었는지 요즘은 수면 위로 고개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육사 최재덕씨(41)는 “사육장내 바닷물까지 얼어붙어 아침마다 얼음을 깨고 있다”며 “동물들이 추위에 놀라 좀처럼 뛰어 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그야말로 ‘동장군(冬將軍)’과의 전쟁 중. 공원내 해양관에서 매일 두 차례씩 열리는 돌고래쇼는 15일부터 공연이 잠정 중단됐다.

정상적인 공연을 위해선 공연장의 실내 온도가 17∼18도, 수온이 20∼23도는 돼야 하지만 한파가 이어지면서 실내 온도는 7도, 수온은 17도를 넘지 못하자 돌고래의 건강을 염려한 대공원측이 공연 스케줄을 취소했기 때문.

감기, 기관지염 등 각종 질환에 걸리는 ‘동물환자’도 속출하고 있다. 열대지방이 ‘고향’인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은 며칠째 감기로 ‘골골해’ 사육사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최근 며칠 새 3년생 오랑우탄 암컷 ‘보배’와 각각 5년, 7년생 침팬지 ‘똘똘이’, ‘갑순이’가 잇달아 감기에 걸렸다.

대공원측은 이들을 위해 모포나 내복 등을 덮어 줘 체온을 보호하는 한편 비타민이 풍부한 딸기, 바나나, 포도 등과 함께 녹용이 섞인 드링크제, 십전대보탕까지 제공하는 등 ‘비상 대책’에 들어갔다.

사육사 이길용씨(57)는 “워낙 추운 탓에 난방을 해도 사육장내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며 “밤에는 2시간마다 사육장 온도를 측정하고 우리 앞에는 전기라디에이터까지 설치 가동중”이라고 말했다. 올 들어 보름동안 서울대공원의 난방비는 1억5700만원선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배 이상 늘었다.

대공원 관계자는 “낡은 시설 때문에 난방 효율이 떨어진 것도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공원내 진료실도 ‘만원’이다. 5년생 아프리카 코끼리와 이구아나는 기관지염, 돼지꼬리원숭이와 남미산 큰개미핥기는 설사와 식욕부진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김기재진료과장은 “감기질환 외에도 추위로 인한 설사, 소화불량, 식욕부진 증세를 보이는 동물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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