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재산 못돌려준다"…반민족자 재산권보호 정의 어긋나

  • 입력 2001년 1월 17일 18시 50분


친일파 조상의 재산을 돌려달라는 후손의 요구는 헌법정신과 정의의 관념에 어긋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합의14부(재판장 이선희·李善嬉부장판사)는 16일 구한말 일제가 한반도 강점 욕심을 드러낸 ‘을사보호조약’ 체결(1905년)에 협력한 친일파 이재극(李載克)의 손자며느리 김모씨(78)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 확인 청구소송을 각하했다. 김씨는 96년 국가가 과거 이재극 소유로 자신이 물려받은 경기 파주시 문산읍 도로 321㎡를 주인없는 땅으로 분류, 소유권 보존등기를 마치자 이를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던 것.

이 판결은 헌법 정신을 수호해야 할 국가기관으로서 반민족행위에 대한 청산 의무를 적극적으로 해석, 이행하겠다는 법원의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우리 헌법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법원은 그 정신을 구현하고 헌정질서를 수호할 의무가 있다”며 “따라서 민족의 자주독립과 자결을 스스로 부정하고 일제에 협력한 반민족행위자와 그 후손이 과거 재산을 되찾으려는 것에 협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재극은 일본정부와 통모, 한일합병에 적극 협력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은 반민족행위자”라며 “문제의 부동산이 그의 반민족행위와 관계없는 재산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를 돌려달라는 청구는 정의와 신의칙(信義則)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이재극은 문신(文臣)으로 을사보호조약 체결당시 왕실의 종친으로서 궁내 동정을 알려주는 등 일제에 협조했던 인물. 일제시대인 1919년 이왕직장관(李王職長官)에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친일파 후손의 재산권을 인정해준 기존 판례와 달라 논란도 예상된다.

대법원은 97년 7월 이완용(李完用)의 증손자가 “48년 농지개혁때 몰수된 710여평의 땅을 돌려달라”며 조모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친일파라고 해서 법에 의하지 않고 재산권을 박탈할 수는 없다”며 원고 승소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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