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구청의 ARS 민원서비스를 이용해 호적등본 발급신청을 했던 이모씨(32·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이날 오전 이씨는 구청 ARS에 신청서류의 종류와 발급통 수, 이름과 연락처까지 남긴 뒤 두 시간 후 구청을 방문했다. 그러나 담당직원의 답변에 맥이 풀린 이씨. 올해부터 개정호적법에 따라 신원 확인 없이 ARS를 이용한 호적등초본의 발급신청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바쁜 회사일 때문에 점심도 거르고 찾아갔는데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며 “변경된 서비스 내용을 방치해 혼란을 부추기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민원인 골탕먹이는 구청 ARS민원서비스’. 서울의 다수 자치구청에서 운영 중인 ARS 민원서비스가 관리부실과 복잡한 이용법 등으로 민원인의 원성을 사고 있다. 현재 서울 25개구청 중 ARS를 운영중인 곳은 절반이 넘는 14곳.
이 중 상당수가 중단된 서비스를 여전히 가능한 것처럼 안내하고 있다. 본보취재진이 26일 직접 전화를 걸어본 결과 노원구외에도 영등포, 광진, 동작, 강서, 서초구 등 5개 구청의 ARS는 여전히 호적등초본 발급신청을 접수받고 있었다. 이들 구청의 ARS는 민원내용을 메시지로 남기는 ‘음성녹음방식’으로 접수번호까지 불러주고 2시간 뒤 해당 부서에서 서류를 찾아가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곁들였지만 변경내용에 대해선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같은 방식으로 24시간 ARS 시민불편상담을 운영중인 관악구는 민원사항을 남기려 하자 ‘녹음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반복되면서 서비스가 되지 않았다. 또 구로구는 10여개의 부서 안내가 모두 끝난 뒤 해당부서 번호를 누르자 ‘업무가 종료돼 연결이 안된다’는 메시지가 나와 민원인의 ‘인내’를 시험하는 경우.
사용법이 너무 복잡해 제 기능을 상실한 경우도 있다. 은평구의 ARS서비스는 다른 구청과 달리 ‘음성인식시스템’을 이용해 연결을 원하는 부서명이나 담당직원의 이름을 말하면 자동으로 연결되는 방식. 그러나 정확한 부서명칭이나 담당자 이름을 ‘답변’하지 못하면 연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민원실’로 음성을 입력하자 ‘이선실’, ‘이병칠’ 등으로 잘못 인식해 엉뚱한 부서나 직원에게 연결되기 일쑤였다. 관계자는 “현재 운영중인 시스템이 오류가 잦아 사용이 불편하다는 민원이 많다”고 귀띔했다.
연결이 아예 되지 않거나 힘든 경우도 있다. 도봉구청의 ARS서비스는 하루종일 신호만 갈 뿐 연결이 되지 않았고 강남구의 ARS여권발급안내서비스도 10여차례나 통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서울시의 ARS민원신고전화도 예외는 아니다. 해당번호를 누른 뒤 ‘#’버튼을 눌러야 연결이 가능하지만 서비스 내용의 어디에도 이런 안내가 없어 대부분의 이용자는 ‘사용법을 숙지하고 다시 전화하라’는 메시지만 나온 뒤 끊어지는 전화를 원망하기 일쑤다.
일선구청의 ARS담당자는 “몇년 전 앞다퉈 도입한 ARS가 이용불편으로 오히려 ‘민원대상’이 되자 일부 구청은 아예 서비스를 폐지한 상태”라며 “내용과 운영면에서 이용자의 입장을 고려한 녹음방식 등 고쳐야 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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