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서울 구로구 고척동 영등포교도소 인근에서 살아온 박모씨(54·여)는 교도소 이전 방침이 백지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씨는 “이제 누구 말을 믿고 살아야 하느냐”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영등포교도소 및 구치소 인근 주민들이 법무부의 교도소 이전 백지화 방침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 지역의 오랜 숙원이었던 교도소 및 구치소 이전 계획이 물거품이 되면서 그동안 주민들이 꿈꿔 왔던 ‘장밋빛’ 청사진이 구겨졌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영등포교도소 및 구치소를 서울 인근인 부천 시흥 안산 의왕시 등 경기도 지역으로 옮기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현지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격렬한 ‘집단 민원’에 부닥친 법무부는 지난해 12월9일 민간 사업자로 선정된 B건설 등 3개 회사에 “부지가 없어 계획을 취소한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영등포교도소 및 구치소 부지는 국철 개봉역과 도보로 3분 거리인데다 경인로와 인접해 있어 교통여건이 좋고 준공업지역으로 묶여 있는 부지 5만평이 용도 변경될 가능성까지 있어 상당한 개발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곳.
이 때문에 그동안 ‘혐오시설’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 감수해야 했던 유무형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심리가 주민들에게 퍼져 있었다.
주부 김현애씨(52)는 “이번에는 확실히 교도소가 옮겨간다고 하기에 지역 주민들은 집을 팔려고 했던 계획을 취소하기도 했다”면서 “3년 뒤 교도소가 다른 지역으로 완전히 옮겨가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재건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보일러공사를 미뤄놓았다”고 낙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조직적으로 교도소 이전 운동을 벌일 태세다. 고척동 H아파트 주민들은 지난주 말 긴급 반상회를 열고 앞으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부녀회장 김명옥씨(39)는 “교도소 이전 계획 백지화에 대해 구청으로부터 아직 어떤 통지도 받지 못했다”면서 “이젠 집단 행동에 나서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구로구청측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주민들에게는 교도소 이전에 대비해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위한 예비 조사를 하고 있다는 설명만 되풀이할 뿐 방침 변경에 대한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로구의 한 관계자는 “교도소 이전 여부는 전적으로 법무부 소관사항”이라고 전제한 뒤 “앞으로 주민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구로구의 지역 발전과 법무부 재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교도소 이전을 적극 추진했다”면서 “그러나 교도소를 옮기려고 했던 지역의 주민 반발이 너무 거셌기 때문에 결국 이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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