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집앞엔 딴차… 다른곳 주차땐 '파손' 공포

  • 입력 2001년 2월 6일 18시 40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사는 회사원 김모씨(36)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달 25일 밤늦게 경험한 ‘황당한’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거주자 우선주차제에 따라 자기 집 앞에 김씨만의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긴 하지만 다른 차가 버젓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 결국 집 근처를 20분 동안 배회한 뒤 가까스로 다른 ‘빈 공간’에 차를 세웠지만 김씨의 마음 한구석은 개운치 않았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 자신의 차 뒷바퀴 타이어 2개가 ‘날카로운’ 송곳에 찔려 펑크가 난 것이다.

김씨는 “한 달에 몇 만원씩 내고도 주차를 못하고, 마음이 약해 부정주차한 차를 견인도 못하게 한 결과가 차량파손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시가 96년 3월부터 시행한 거주자 우선주차제가 아직 제자리를 못 찾고 있다. 매달 3만∼4만원의 주차비를 내고도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하거나 ‘뜻하지 않은’ 피해를 봐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

거주자 우선주차체는 주차난이 심각한 단독주택가 주차난 해소를 위해 일선 구청이 월정액을 받고 집 앞에 주민들을 위한 주차공간을 설치한 것. 시행 5년째를 맞아 서울시내에서 확보된 거주자 우선주차면은 25개 구, 308개 동에 총 4만7260면(유료 기준). 서울시는 이 수치를 올 9월까지 30만면까지로 늘린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양적 성장에만 치우쳐 있어 매일 밤 주택가 현장에서 벌어지는 주민의 아우성은 그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주차장 관리 및 단속이 안 되고 있다는 점.

거주자 우선주차 대상이 아닌 차량이 주차해 있을 경우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견인하는 것이 전부인 데다 그나마 도로의 폭이 좁은 골목길의 경우 견인차가 들어갈 수 없어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또한 각 구청이 견인 마감시간을 오후 11시까지로 제한하고 있어 이 시간을 넘길 경우 견인요청에 응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토요일에는 견인 마감시간이 오후 6시로 당겨지고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견인조치를 아예 포기해야 한다.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이창주씨(26)는 “밤늦게 내 자리에 다른 차가 세워져 있을 때 견인요청을 하지만 담당 직원이 퇴근하고 없어 결국 1시간 가량 주변을 맴돌다 다른 곳에 주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차비를 낸 주민들이 ‘마지못해’ 다른 곳에 차를 세워뒀을 때 타이어 펑크나 백미러 파손 등 ‘불의의 테러’를 당해도 마땅히 하소연할 곳이 없다.

강남구 관계자는 “거주자 우선주차제를 시행하는 주차장에서의 차량파손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이 적지 않다”며 “그러나 사설 및 노상 주차장과 달리 거주자 우선주차면에서의 차량 파손은 보상해 줄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교통문화운동본부 박용훈 대표는 “거주자 우선주차제는 관리와 단속이 엄격하지 못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관리구역을 광역화하거나 공공근로자 등을 24시간 전문관리인으로 이용하는 방안 등을 모색해 봐야한다”고 제안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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