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성역 못 깬 병역비리수사…정치인 1명만 사법처리

  • 입력 2001년 2월 13일 18시 38분


지난 1년간 계속됐던 병역비리 합동수사결과가 13일 발표됐으나 당초 의혹이 제기됐던 정치인에 대한 사법처리는 단 1명에 불과해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검군 병역비리 합동수사반(본부장 이승구·李承玖서울지검 특수1부장, 서영득·徐泳得 국방부 검찰단장)은 이날 지난 1년간 병역비리에 대한 수사에 나서 181건의 병역비리 관련자 327명을 적발해 이중 168명을 구속 기소하고 송재환 전 병무청장 등 17명을 수배했다고 밝혔다. 합수반은 또 병역 면제자 160명은 재신검을 거쳐 현역으로 입영조치하도록 병무청에 통보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수사결과는 사법처리 대상자가 대부분 ‘송사리’급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수사착수 당시 검찰이 ‘성역없는 사정활동을 벌이겠다’고 천명했던 것과는 너무 판이한 수사결과라는 지적이다.

이날 발표된 수사결과에 따르면 그동안 적발된 병역 면제 알선자는 총 134명으로 이중 병무청 직원이 79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민간인 브로커, 군 기관원 및 군의관 순이었다.

병역 면제 청탁자는 총 180명으로 이중 사업가와 기업체 임원이 84명으로 가장 많았다.

정치인 자제 병역비리 수사 결과

수 사 결 과해당자(명)
재신검 결과 원 판정과 동일, 혐의 없음 21
해외 체류로 본인 및 가족 수사 못함, 군의관 등 관련자 수사 결과 혐의 없음 4
면제 판정 등 절차상 하자, 사법처리 대상 안됨 3
병역면제 등 대가로 금품 오간 사실 확인됐으나 공소시효 완료 2
서울지방병무청장에게 200만원 주고 병역면제 판정 받은 혐의 확인1(김태호 의원 아들)
합 계31

합수반 관계자는 “합수반은 해체되지만 병역비리의 ‘몸통’으로 알려진 박노항(朴魯恒·50) 원사를 붙잡기 위한 검거 전담반은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병역비리 검군합동수사는 지난해 2월 시민단체 ‘반부패국민연대’에서 사회지도층 자제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전현직 국회의원 등 정치인 54명의 자제 75명의 명단을 넘겨받은 당시 이승구 대검 중수1과장은 “병무비리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중범죄 행위로 간주해 성역 없는 사정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3월 정치인 자제 등이 소환에 불응하자 당시 임휘윤(任彙潤)서울지검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재소환에도 응하지 않으면 인적사항, 면제사유 등을 공개하고 혐의가 인정되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수사에 나서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합수반은 반부패국민연대에서 명단을 넘겨받을 당시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정치인 자제 44명을 제외한 31명을 1년간 수사했다. 그러나 그중 김태호(金泰鎬) 한나라당 의원의 아들 1명의 병역비리혐의만 확인해 김의원을 불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정치인 자제에 대한 수사를 종결한 것.

합수반 관계자는 “소환에 응하지 않은 정치인 명단은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이 같은 수사 결과를 놓고 병역비리 수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전례없이 강한 수사의지를 보이고 수사 대상에 야당 의원이 많다고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선 ‘표적사정’ 논란이 일었다.

합수반은 총선 직전 김의원에게 소환 통보를 한 뒤 총선이 끝나고 김의원을 불구속 기소했고 그 뒤에 사법처리된 정치인은 없다.

수도권의 한 검사는 “총선 직전 뜨겁던 정치인 자제에 대한 수사 열기가 총선이 끝나며 급격히 식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