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이사올 사람위해 '천사의 편지' 쓴 하정원씨

  • 입력 2001년 2월 18일 19시 14분


자신이 살던 아파트로 이사를 올 사람을 위해 꼼꼼한 생활메모를 남겨 화제가 됐던 하정원씨(37·부천대 의상학과 강사)가 17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김윤기(金允起) 건설교통부 장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건교부 장관이 건설관련 기술자나 기업인이 아닌 일반인에게 표창장을 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하씨가 메모를 쓰게 된 동기는 소박했다.

“결혼하고 8년 동안 전전하던 전세살이를 끝내고 3년 전 사뒀던 내 집으로 이사하게 됐어요. 다른 때하고는 다르게 정이 느껴지고 집안 구석구석이 궁금하더라고요. 이사올 분들도 전세살이를 정리하고 자기 집으로 들어오는 경우였어요. 같은 마음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메모를 시작했습니다.”

하씨는 3주에 걸쳐 메모를 정리하면서 집안 구석구석에 대한 정보는 물론 집 주변의 상가 음식점 병원 등의 특징과 이용시 주의사항 등을 A4 용지 5장 분량에 빼곡히 채웠다. 하씨의 사연은 12일자 동아일보 메트로면 ‘500자 세상’에 ‘천사의 편지’로 소개됐으며 김장관은 직접 이 글을 읽고 표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씨의 메모 중에는 아파트 설비에 대한 전문 지식도 들어 있었다. 그런 부분은 남편 황진순씨(38·노원을지병원 소아과 의사)가 도맡았다.

“남편이 오히려 더 세심하고 꼼꼼해요. 전에 살던 전셋집에서는 조그만 흠이라도 나면 ‘남의 집 물건을 함부로 써서 되겠느냐’며 닦달했을 정도였어요.”

8년간 전세살이를 하면서 집주인과 언짢은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그동안 만난 집주인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셨던 게 제일 큰 비결이에요. 굳이 하나 더 꼽으라면 전셋집을 내 집처럼 생각하고 조심해서 다루려고 노력했을 뿐이에요.”

김장관은 이날 열린 건교부 과장급 이상 확대간부회의에서 하씨에게 표창장을 주면서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주거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건교부가 지향할 바를 제시해 주었다”고 말했다.

건교부는 또 하씨의 생활메모에서 일반적인 아파트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정리, 더불어 살아가는 아파트 생활에 필요한 매뉴얼로 만들어 배포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표창장을 받은 하씨는 “별 일을 한 것도 아닌데…”라며 겸손해 했다.

<황재성기자>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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