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들은 놀랍게도 수험생이었다. 그것도 현직 명문대 교수로서, 국문학계를 이끌고 있는 서울대 심재기(沈在箕·63·국어국문학과) 숙명여대 이인복(李仁福·64·〃)교수 부부였다.
이들 부부는 이날 현도사회복지대학 편입학 시험에 합격, 새학기부터 사회복지과 3학년으로 20대 학우들과 나란히 수업을 받는다. 이들은 “우리 공부 때문에 행여나 재직중인 대학에 누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느지막이 사회복지대학에 입학한 것은 개인적인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 부부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의상 의무)’를 실천하는 인물들. 낮 동안 명문대 교수, 문학평론가, 수필가 등으로서의 생활이 끝난 뒤 저녁에는 고단한 삶에 지친 여성들과 함께 기거하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일을 한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등산로 초입의 수수한 4층 건물은 이들 부부의 집인 동시에 미혼모와 가정폭력으로 삶이 구겨진 여성들의 쉼터인 ‘나자렛 성가원’. 이 시설은 이교수가 89년 대한민국 문학상(평론 부문) 부상으로 받은 상금 등으로 지었다. 이들은 월급과 저서의 인세, 강연료 등도 고스란히 이 시설 운영에 바친다.
이교수는 성가원을 설립하기 10여년 전부터 가정폭력 피해여성 등을 돌보아 왔다.
“열네살 때 6·25전쟁이 터져 아버지가 납북되고 오빠와 남동생도 실종돼 병든 어머니와 다섯 여동생을 부양해야 했지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니는 주변 기지촌 여성들에게 밥을 퍼주곤 하셨어요.”
이교수는 그런 어머니에게서 봉사의 삶을 유산으로 받은 셈이다. 남편 심교수는 그런 부인을 곁에서 격려하며 도왔다.
두 사람은 인천 창영초등학교 6학년 6반 동급생. 당시 심교수는 형편이 어려워 동생들과 함께 천주교회 고아원에 가 있던 이교수를 찾아가 “쓰러지면 안된다. 고아원 출신이라고 멸시할지 모르니 나한테 시집 오라”고 해서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자녀교육에서도 남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사돈댁의 양해를 얻어 딸 넷 중 큰딸의 혼수비용은 뇌성마비 환자의 집을 짓는 데, 둘째 딸의 혼수비용은 장애인의 집을 짓는 데, 셋째 딸의 혼수비용은 나자렛 성가원 기금을 충당하는 데 냈다. 막내 딸의 혼수비용은 성당 건축기금으로 내놓았다.
네 딸과 사위는 이들 부부의 회갑 때 부모의 재산을 성가원에 바치는 데에 동의한다는 재산 포기각서에 날인하기도 했다.
이교수는 “퇴직후 남편과 함께 경기 포천에 사둔 1500여평의 땅에 미혼모 등의 쉼터 겸 교육기관을 세울 계획인데 이론적 지식이 없는 감성과 애정만으로는 올바로 운영하지 못할 것 같아 늦게나마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청원〓지명훈기자>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