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대학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불건전하고 퇴행적인 지배구조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대학의 80%를 점하고 있는 사립대의 대다수 재단은 대학을 영리수단으로 간주하고 ‘소유’와 ‘통제’를 강화하려는 정책을 취해 왔다. 재단들은 자신들의 지배력을 보장하기 위해 로비, 매수, 인적 유대 등과 같은 수단을 동원해 교육부 관료와 교육관련 정치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왔다. 대학의 숨통을 조이면서 연구와 교육의 질을 현격하게 저하시켜 온 대학위기의 원인은 바로 이 왜곡된 정관학(政官學)의 대학 지배구조이다.
이 음성적 대학 지배구조는 요지부동인 채 최근에는 효과적인 대학 지배의 또 다른 방책으로 신자유주의적 ‘대학개혁’이 시도되고 있다. 대학을 기업체제로 변화시키고 교수 전체의 신분을 불안정하게 만들어야 대학이 개혁된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효율성이라는 ‘낡은’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대학지배 연합세력의 새로운 공격일 뿐이다. 대학재단이나 관료의 기득권을 위해서라면 대학의 공적 사회적 책무는 버려도 좋다는 무책임한 대학정책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에서 자유와 비판, 균형의 원리는 파괴되고 있다. 대학의 위기는 가속화되고 총체적인 것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위기의 원인을 교수사회의 나태로 돌리는 교육부의 주장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현재의 총체적 대학위기는 진정한 대학개혁의 주체와 조직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대학개혁의 대상은 잘못된 대학 지배구조와 그들이 만들어 내는 파행적 대학정책이며 개혁의 핵심 주체는 교수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교수조직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으나 현재 대학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은 교수노조라고 생각한다.
첫째, 교수들은 그 노동의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교육 및 연구라는 특정목표 아래 고용돼 정신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현재 직면하고 있는 대학의 위기는 부분적인 절충과 흥정 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교수들의 단결력에 기초하고 권리가 법적으로 뒷받침되는 강한 조직, 즉 노조가 필요한 것이다. 셋째,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사례에서 잘 확인되듯이 공무원을 포함한 노동자의 법적 권리가 제약돼야 할 이유는 전혀 없으며 대학교수들의 노동권 확보는 우리 사회의 인권 향상에 커다란 상징성을 갖는다. 넷째, 공공성 민주성 생산성을 지향하는 대학운영체제를 건설하고 연구와 교육의 질을 대폭 향상시키는 건설적인 대학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연구와 근본적 대안 제시를 통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가는 가장 선진적인 조직형태가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최갑수(민교협 공동의장·서울대 교수)
기본적으로 교수노조 문제는 2년 전 노사정위원회에서 교원노조가 합법화한 것처럼 사회적 변화 과정에서 결정될 문제라고 본다. 그러나 교수노조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는 교수직에 대한 문제이므로 신중한 접근이 요청된다.
첫째, 교수는 고도의 전문직이므로 노동자 성격이 강조되는 노조보다 전문직 성격이 부각되는 전문직단체 결성이 바람직하다. 전문직은 장기간의 훈련과 교육, 직업윤리와 전문직 단체를 특징으로 한다. 의사의 경우 노조가 허용돼 있지만 협회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둘째, 교수 본인들의 인식 문제다. 교수들도 교수노조에 대해 53%가 부정적이라는 지난해 한 전문지 여론조사 결과처럼 아직은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셋째, 교수에 대한 사회적 위상을 실추시킬 수 있다. 교수노조에 대해서는 일반 국민의 인식도 중요하다.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회적 지위에 있다. 경제적 보수 못지 않게 명예와 자존심이 중시되는 직업이다. 교수까지 노조를 결성해 활동하면 국민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교수노조가 교수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역할도 일부 하겠지만 낮추는 쪽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본다.
넷째, 교원노조와는 다른 근무조건을 들 수 있다. 초중고 교사는 국가공무원이나 국가 보조를 받는 사립학교 교사들이다. 따라서 전국단위 및 광역단위 노조를 허용하면서도 단위학교 노조를 금지해 학습권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립인 대학은 근무여건이 모두 다르므로 전국단위의 노조보다는 대학단위 노조를 가상해야 하므로 좀 더 치밀한 준비와 대응이 요구된다.
다섯째, 노조 결성의 이유로 교수계약제와 연봉제에 따른 신분불안을 들고 있으나 이는 다른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즉 현재의 기간제 임용제에서는 교수가 다소 부당하게 재임용에서 탈락돼도 법적 구제 대상이 아니어서 분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앞으로 교수계약제는 객관적인 기준과 절차를 명료하게 하고, 부당한 탈락을 구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신분 불안과 학문의 자유는 보장될 수 있다.
여섯째, 노사정위원회에는 좀 더 신중한 의견수렴을 위해 위원 구성을 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산업체 노조 문제를 위해 구성된 위원들로는 교수노조 문제와 공무원 노조 문제를 다루는데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교수단체는 물론 총장단체 및 재단협의회에서 추천하는 위원이 함께 포함되도록 개선돼야 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교수노조 결성이 검토돼야 하고 불가피하다고 해도 현 시점에서 교수노조는 시기상조라는 느낌이다. 이 시점에서는 교수노조 결성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을 수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할 때다. 단기적으로는 전문직 단체로 출발하는 것도 지혜로운 접근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현청(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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