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을 전공했지만 컴퓨터는 ‘도사’예요. 학교 다닐 때 컴퓨터를 끼고 살았거든요. 컴퓨터 학원도 6개월간 다녔죠.”
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섬유빌딩 2, 3층 전시장에서 열린 서울지방노동청 주최 취업박람회장. 90곳에 마련된 부스 앞에서 ‘비장한’ 표정의 대졸 고졸 구직자들이 각자 특기를 소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부 지원 인턴제를 희망하는 업체 201개가 참여, 모두 789명을 뽑기로 예정된 이날 박람회장에는 공식 행사가 시작된 오전 10시 이전부터 이미 500여명의 구직자가 몰려와 게시판에 붙은 업체 현황을 주의 깊게 살펴본 뒤 취업 희망업체의 원서를 작성하는 등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하루 면접을 치른 구직자는 8000여명. 당초 서울청이 예상했던 2500명의 3배 이상이다.
한 정보통신 관련 업체 부스 앞에서 초조하게 면접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김모씨(27). 서울 지역 중상위권 대학 상경계열을 졸업한 그는 “작년 9월부터 대기업 등 13곳에 원서를 냈으나 8번은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고 나머지는 면접에서 떨어졌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졸 백수’라는 주위의 시선이 너무 따갑다”면서 “인턴 사원으로 열심히 일해 정식 사원으로 채용되든지, 아니면 인턴 사원 경력을 쌓은 뒤 좀 더 나은 다른 직장을 찾아보기 위해 박람회장을 찾았지만 밥먹듯이 떨어지다 보니 솔직히 자신은 없다”고 했다.
벤처회사를 1년간 다니다 회사가 어려워져 실직한 뒤 여행사 취업을 알아보러 왔다는 문모씨(25·여)는 “취업하기가 바늘구멍이라 대학 친구들은 대부분 휴학을 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2001학년도 대졸자 취업 현황조사에 따르면 올해 취업률 전망치는 53.4%에 불과하다. 대졸자 2명 중 1명은 사회 진출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셈이다.
그러나 면접관들은 한결같이 취업 희망자들의 능력과 자세가 생각보다 뛰어나다고 입을 모았다. 공작기계 제조업체인 대한EDM㈜ 이근협인사과장은 “대부분 사회 초년병들인데도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면서 “8명을 뽑을 예정인데 40명 이상이 몰려와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3시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와 김호진(金浩鎭)노동부장관이 박람회장을 찾아 업체 대표들과 구직자들을 격려했다. 구직자들은 이총리 등과 반갑게 악수를 하기는 했으나 경제 악화에 따른 취업난 때문인지 눈길은 따뜻하지 않았다.
정부지원 인턴제는 인턴사원을 채용하는 중소기업 사업주에게 정부가 1인당 50만원씩 3개월간 지원금을 주고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1인당 50만원씩 3개월분을 추가로 지원하는 제도로 정부는 올해 모두 2만9000명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