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 한국 女근로자 현주소]임시-일용직 70%

  • 입력 2001년 3월 7일 18시 38분


안은자씨
모 은행 콜센터에서 전화상담업무를 담당하던 안은자(安銀子·31)씨. 대학을 나온 안씨는 6일 2년간 일해온 직장에 사표를 썼다. 안씨는 세계여성을 날(8일)을 앞두고 한국여성의 현실을 생각한다.

“계약직 사원이었어도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하지만 부당한 대우에 항의 한번만 해도 불이익을 받고 해고위협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가 일하던 곳은 대부분 여사원인 500여명을 50명의 정규직원이 관리하면서 조별로 고과를 하는 체제였다. 정규직은 남성이 많았고 매달 시행되는 고과에서 6개월내에 낮은 점수를 두 번 이상 받으면 자동해고된다.

“점심시간 50분 빼고, 아침 9시반부터 6시반까지 커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이 일했습니다. 자리를 뜰 경우 휴식 버튼을 누르면 초단위로 시간이 매겨지고 20분이 넘으면 부르러 오는 식이죠.”

기본급 월 105만원. 매년 재계약해도 한푼도 인상되지 않았다. 업무 외 교육시간이 많다고 항의하면 “정규직도 똑같이 교육받는데 왜 너희만 그러느냐”는 면박이 돌아왔다.

퇴사한 결정적 계기는 기본급을 85만원으로 내리고 성과급을 주겠다는 회사측 안에 항의, 불이익을 받게 됐기 때문. 80∼90점대를 유지하던 고과가 60점대로 떨어졌다. 여기에 일부 정규직사원이 사내 다단계판매를 시작하자 비정규직 사원들이 꼼짝 못하고 물건을 강매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7일 서울여성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은 그는 “앞으로 은행의 잘못된 처우를 알리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200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근로자의 70.5%는 임시직과 일용직. 여기에 파견근로자를 더하면 비정규직 여성근로자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박영삼(朴泳三)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국장은 “여성들의 고용형태가 바뀌면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신고된 사례들을 보면 국제통화기금 사태이후 구조조정과정에서 명예퇴직시킨 사원을 다시 계약직으로 불러들이거나 신규사원을 계약직으로 뽑은 은행의 경우가 대표적. 30%에 이르는 계약직 사원 중 여성의 비중은 근 70%다.

박국장은 “모 은행의 경우 출납업무를 하는 정규직 대졸여사원이 연봉 2300만∼2400만원을 받는 데 같은 일을 하는 계약직은 1100만원 정도를 받는다”면서 “대부분의 은행이 비슷한 형편이고 덩달아 정규직 여사원의 임금이 내려가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정양희(鄭良姬) 서울여성노조 위원장은 “과거 노골적이던 직장내 성차별은 남녀고용평등법 실시이후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를 매개로 한 성차별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단체들도 세계여성의 날을 앞두고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보호문제를 올해 주요 이슈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조영숙(曺永淑) 여성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그간 남녀고용평등법, 가족법,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등의 제개정 운동을 벌여오면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문제에서도 보듯 한국의 여권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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