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사회硏 도시가구조사]빈부차 심화…극빈층 10%가 대졸

  • 입력 2001년 3월 8일 18시 31분


대기업체 부장으로 일하다 지난해 5월 사표를 쓴 윤모씨(47). 올해부터 중고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과외를 중단시켰다. 중형 자동차는 두달 전에 팔았고 신문과 휴대전화도 끊었다. 벌이는 없는데 빚을 갚고 남은 퇴직금이 조금씩 줄어드는 데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에 5∼7층 짜리 건물 3동을 가진 한모씨(45). 임대료 수입만 한달에 1500만원이 넘는다. 50평 규모의 한식당도 갖고 있다. 아파트와 빌라 등 집이 3채, 승용차 2대는 외제. 지난 겨울에 호주와 태국으로 각각 보름씩 골프여행을 다녀왔다.

97년 말 닥친 외환위기와 불황으로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상류층과 빈민층간 분배구조가 점점 나빠져 1%의 부유층이 쓰는 돈이 도시 전체 가구의 절반이 쓰는 돈보다 많을 정도로 양극화 현상이 심하다.

▽빈곤층이 많아진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도시 5246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빈부격차 확대요인의 분석과 빈곤 서민생활 대책연구’에 따르면 99년의 경우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20%가 전체 소득의 40%를 차지했다.

특히 상위 5%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에 13%에서 16%로 늘어 우리 사회의 부(富)가 소수 상층부에 집중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적으로 10명 중 2명은 소득이 늘고 나머지는 줄거나 제자리여서 사회구조가 ‘20대 80’으로 바뀌는 현상을 보였다.

부유층과 극빈층은 소득의 안정성에서 큰 차이가 났다. 극빈가구(하위 5%)의 3분의 2 이상은 돈벌이를 하는 가족이 한명 이상 있는데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대부분 임시직 일용직이나 행상으로 벌이를 하기 때문.

가족이 전부 일을 하지 않아도 중류층 이상(상위 50% 이상)에 속한 가구는 96년 이후 계속 늘어나 99년의 경우 9%에 달했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 등 비근로 소득에서도 빈부격차가 심화된다는 뜻이다.

극빈층의 3분의 1은 가구주가 아무런 직업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이 비율은 3년 전보다 두배 가량 높다.

계층을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는 자기 집이 있느냐 없느냐는 점. 빈곤층은 무주택자가 절반을 넘었지만 중류층은 주택을 가진 사람이 3분의 2를 넘었다.

소득이나 소비지출이 낮은 집일수록 여자가 가장인 경우가 많았다.

▽빈부격차가 굳어진다〓소득과 소비지출 규모가 하위 10%에 속하는 계층을 ‘절대 빈곤층’으로 봤을 때 여기서 벗어난 가구보다 새로 포함된 가구가 많았다.

또 서민 빈곤층(하위 50% 이하) 가운데 생활수준이 중류층으로 올라간 가구보다 중류층에서 서민 빈곤층으로 ‘추락’한 가구가 많았다. 98년에 소비 지출이 중류층에 속한 가구 중 76.5%, 절대 빈곤층에 속하는 가구의 57.8%는 1년 뒤에도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대학 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극빈층에 속하는 가구가 열집 중 한집으로 늘어났는데 이는 외환위기 뒤 구조조정이 고학력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조사대상 기간인 10분기 가운데 1분기 이상이라도 절대 빈곤을 경험한 가구는 약 30%이고 상대적 빈곤층(하위 10∼20%)에 머물렀던 가구는 41.9%였다. 중류층의 소비수준에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가구는 17.1%.

만성적 서민 또는 빈곤층이 많고 ‘빈곤에서의 탈출’이 어려우며 중류층은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지만 부유층은 더 안락해진다는 얘기이다.

▽외국도 마찬가지〓미국 상무성 자료에 따르면 98년 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10년 전보다 15% 늘었지만 하위 20%는 소득이 거의 안 늘었다. 영국에서는 79∼89년 사이에 상위 20%의 소득 점유율이 36%에서 42%로 늘었지만 하위 20%는 9%에서 8%로 감소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전 세계적으로 빈곤층의 실질소득이 제자리거나 줄어드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박순일(朴純一)박사는 “절대 빈곤층을 줄이기 위해 이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서 고용구조를 개선하고 소득 재분배와 생활안정을 위해 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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