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수서경찰서 형사계 사무실. 서울 강남구 세곡동 율암마을 비닐하우스 화재로 함께 잠자던 일가족 11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목격자’ 이기현씨(21·여)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목소리는 한없이 가라앉았고 가위에 눌려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룬 얼굴엔 핏기 한점 보이지 않았다.
목격자 진술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경찰서로 불려온 그는 경찰이 타다 남은 1000원짜리 돈뭉치와 불에 녹아버린 동전을 보여주자 오열하고 말았다.
“어머니(김옥례·55·사망)가 숨겨두신 비상금과 조카들이 돼지저금통에 모아둔 돈일 거예요. 오늘이 어머니 생신인데 선물도 못해드리고….”
가난했지만 모두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가족들이었다. 1일부터 S전자 서비스센터의 실습생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씨는 화재가 나던 날도 ‘실습비 40만원을 받으면 부모님께 뭘 사드릴까’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가족을 잃고 말았다.
허름하지만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던 비닐하우스마저 사라져 이씨는 불이 나던 날 야근과 아르바이트로 화를 면한 큰오빠 준석씨(31) 셋째오빠 창현씨(26)와 떨어져 친척집에 머물고 있다. “남은 3명이라도 함께 살아야 힘이 될텐데…”라며 이씨는 고개를 떨구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