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전범재판을 맡고 있는 구유고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에 한국인사로는 처음으로 선출된 권오곤(權五坤·48)대구고법 부장판사는 15일 뉴욕에서 전화를 통해 이렇게 소감을 피력했다.
권 판사는 "이준열사는 국제사회의 무관심과 일본의 방해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할 수 없게되자 분을 못이겨 식음을 끊고 순국했다"며 "그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평화궁(Peace Palace)에 국제형사재판소가 입주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유엔이 지난해 말 외교통상부와 대법원을 통해 재판관 후보 물색에 나섰을 때 선뜻 지망했던 이유를 "이준열사와 헤이그, 평화궁에 얽힌 구한말의 뼈아픈 역사가 한 몫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의 경우 국제사법재판소에 2명의 재판관이 벌써 진출해 있는데 비해 우리 법조계는 국제활동에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고 넌지시 지적했다.
권 판사는 14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25개국 인사들이 입후보한 ICTY 재판관 선거에서 당선득표수(96표)보다 13표가 많은 109표를 획득, 무난히 영예를 안았다. 이날 선출된 14명 중 10명은 현 ICTY 재판관들이 다시 입후보한 것이어서 사실상 4자리를 놓고 각국의 전현직 대법원장, 대법관 등 쟁쟁한 인사들이 치열하게 경합했다는 것.
그는 "저가 잘나서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위상이 국제사회에서 많이 높아졌고 우리 외교관들이 많은 지원을 해줬기 때문"이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판사재직 시절인 85년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이후 각종 국제회의에도 자주 참석한 인연으로 법원내에서 국제통으로 꼽힌다. 충북 청주 출신으로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사법시험 19회(77년)에 합격한 권 판사는 '수석 제조기'로도 통한다. 대학과 사법연수원을 수석 졸업하고 사법시험에도 수석 합격했다.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된 이후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서울지법 부장판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 판사지만 친화력도 대단해 '판사냄새'가 덜 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법조인의 국제적인 활동에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전범문제에 관해서는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자료를 수집해 공부를 새로 해야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어깨가 무겁고 잠도 잘 안온다"고 말했다.
그에 앞서 1996년 박춘호(朴椿浩)교수가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에 당선된 예가 있지만 박교수의 경우는 비상임 재판관이었다. 11월17일부터 4년 임기의 ICTY 재판관으로 활동하면서 유엔의 결의로 기소돼 있는 98명의 구 유고 전범 재판에 참여할 그의 연봉은 14만5000달러(약 2억원). 신수경씨와의 사이에 1남2녀.
<최영훈기자>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