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년 우체국장'댁…부친-4형제 무주서 국장지내

  • 입력 2001년 3월 29일 18시 31분


“술자리에서 술잔이 안돌아오면 ‘우체국장’이라고 하잖아요. 권력도 없고 요즘에는 하도 ‘정보화 정보화’하니 소외감도 느껴요. 하지만 고향에 각종 소식을 전달하면서 보람도 느낍니다.”

‘5부자 우체국장.’ 이들이 우체국에서 근무한 기간을 모두 합하면 무려 154년. 그것도 5부자가 모두 같은 우체국(전북 무주)의 국장을 지냈다.

막내인 전북체신청의 김재원(金在原·60)업무국장이 이달말 42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감함에 따라 ‘5부자 우체국장’은 이제 진기록을 남겨 놓고 모두 현직을 떠나게 됐다. 사실 이 집안의 우체국 경력은 무주우체국에서 16년간 교환원으로 일한 김국장의 막내 여동생과 전주우체국에서 23년을 근무한 셋째 형수의 경력을 합치면 193년에 이른다.

이는 갑신정변과 함께 시작된 117년의 한국 근대 우정사(郵政史)에 유례가 없는 일.

이 집안의 우체국과의 인연은 일제때인 1925년 김국장의 선친 김봉수(金琫洙·72년 작고)씨가 고향인 전북 무주군 안성면에 ‘신안성 우편소’를 세워 우체국장이 되면서부터다.

우체국 관사에 살던 4남5녀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우표와 편지 속에서 놀았고 일손이 달릴 때는 직원 역할도 하면서 자연스레 우체국 생활에 익숙해졌다. 네 아들은 모두 이 우체국에서 임시직으로 시작해 나중에 시험을 거쳐 정식 직원이 됐다.

큰아들 용조(容朝·99년 사망)씨는 28년간, 둘째 용현(容玹·79년 사망)씨는 24년간 우체국 생활을 했고 셋째 용재(容宰·64)씨는 36년 만에 정년 퇴임했다.

특히 막내는 우체국장을 하는 것이 싫어 군 제대후 1965년 행정직(서기보) 시험에 합격해 국세청을 지원했으나 체신부(정보통신부 전신)로 배치됐다. 다음해 다시 같은 시험에 합격해 국방부를 지원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결국 ‘체신 공무원이 운명이려니’ 마음을 먹고 그동안 살아왔단다.

“60, 70년대 베트남전쟁이 한창일 때 이집 저집 아들의 전사통지서를 전해주면서 가장 가슴이 아팠어요. 그 후에도 매월 전사한 아들의 연금을 받으러 우체국에 나오는 노인들의 아픔은 눈뜨고 볼 수 없었지요.”

이들 ‘우체국 가족’이 지금까지 받은 훈 포장과 표창은 모두 70여회에 이른다.

이 집안의 우체국과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국장의 큰아들 도형(度衡·32)씨가 7년째 전주우편집중국에 근무하고 있어 3대째로 이어지고 있다.

4월22일 체신의 날에 녹조근정훈장을 받게 되는 김국장은 “철도 직원은 기차를 공짜로 타지만 체신 공무원은 우표 한장도 사서 써야 한다”며 웃었다.

<전주〓김광오기자>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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