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쟁점토론]공무원노조 설립

  • 입력 2001년 3월 30일 18시 34분


최근 6급 이하 공무원들이 노동자로서의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공무원노조 결성을 공개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 공무원노조 설립에 찬성하는 측은 관료집단의 민주화를 통한 공직사회 개혁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공무원상 정립을 위해서는 공무원의 결사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하는 측은 현재 한국사회가 처한 여건에서 공무원노조는 실정법 위반이며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데다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 클 수 있다며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찬성/부패추방 등 공직 개혁의 발판▼

차봉천(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 위원장)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전공련)은 24일 제1차 대의원대회를 열어 초대 임원진을 선출함으로써 공무원노조 설립을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전공련이 공무원노조 설립을 통해 실현하려는 것은 공직사회의 민주화, 국민에게 사랑받는 공무원상 정립,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회복, 공무원의 권익향상 등이다.

전공련이 우선 지향하는 바는 관료사회의 민주화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 가까운 시일 안에 우리나라를 인권과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진정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관건은 관료사회를 민주화하는 데 있다. 관료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부패하고 무능력한 고위관료들에게 있다. 정부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위직 공무원들을 부정부패집단으로 몰며 여론의 화살을 피해갔다. 진정한 공직사회 개혁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어야 하며 이는 하위직 공무원들을 대표하는 공무원노조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공무원노조가 중점을 둘 부정 감시나 고발은 국가행정기관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은 하루빨리 회복돼야 한다. 한국의 공무원이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한 것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만들어진 비상입법기관(국가재건회의·국가보위입법회의)에 의해서다. 28일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노동기구(ILO) 제280차 집행이사회는 한국정부에 대해 모든 공무원에게 결사의 자유를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무원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과거 OECD에 가입할 때 정부는 국제적 수준에 맞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공언한 바 있다. 따라서 정부는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은 물론 인간존엄권과 평등권을 보장한 헌법과 국제법(ILO 헌장 및 기본조약·유엔의 사회권조약)등에 정면 배치되는 군사정권 시절의 잔재를 청산하고 공무원노조 도입을 위한 법제를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공무원노조 설립 주장은 집단이익을 위한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 공무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이 존중돼야 하고 그럼으로써 공무원 스스로 주도적으로 개혁에 앞장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발전과 국가발전을 이룬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공무원노조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ILO에 가입한 175개국 중에서 한국과 대만만 공무원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만일 공무원노조가 인정된다면, 공무원노조는 공직사회의 부패방지와 새 기풍진작을 통해 국가발전의 근간을 구축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진일보한 공무원 사회, 인간으로서의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회, 혈연 지연 학연에 의한 내부 연결고리를 끊고 성실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드는 개혁이 바로 공무원노조 설립의 기본 취지다.

▼반대/파업하면 중요 공익사업 타격▼

김재원(한양대 교수·경제학)

현 단계에서 공무원노조 설립은 시기상조이자 실정법 위반이며 공무원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고려할 때 그 논의 자체를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최대과제는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대외신인도를 높히는 일이다. 기업, 공공부문, 금융권 중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이 가장 미미한 곳이 정부부문이다. 기업의 경우 핵심역량을 가진 부문에 선택과 집중 을 하는 구조조정이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는 반면 정부부문은 군살을 빼기보다는 오히려 부처가 늘고 행정부의 부총리가 늘고 있는 마당이다. 정부부문의 구조조정이 미흡한 것은 인원감축의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행정부에서 힘 이 약한 우정(郵政)과 철도 분야에서 이뤄진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들 부문은 사실상 대국민 서비스를 담당하는 곳으로 민영화해야 마땅한 분야다.

노조 설립의 타당성은 개별 근로자가 사용자를 대상으로 개별적 교섭을 하는 경우 힘이 약하기 때문에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민 일반이 느끼기에 공무원은 약자도 아니며 사용자인 정부와 더불어 공동 목표를 수행해가는 공인이다. 국민의 세금에 기반하고 있는 공무원의 급여나 복리후생은 다른 부문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개선됐다. 자칫 공무원의 노조 설립이 국민의 눈에는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는 이유다.

또 우리나라와 같이 행정부의 규제가 강한 곳에서 공무원의 노조결성으로 파업 또는 태업이 발생할 경우 철도, 도시철도, 시내버스, 수도 전기 가스, 병원, 은행, 통신사업 등 필수 공익사업 부문 못지 않게 거시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게 나타날 것이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에서 규제완화가 미미한 현 상황에서는 건축허가, 환경감시, 치안 등이 지연되거나 마비될 우려도 크다.

개별 기업에서 품질, 납기일 준수, 불량률 등을 방치한 상황에서 노조를 결성하겠다고 할 경우 사업을 계속할 기업주는 없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공무원 노조결성이 어려운 이유는 권력구조에도 기인하지만 공무원 개개인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직자로서의 겸허한 자기개발 노력과 자긍심을 가지고 규제완화가 진척된 뒤에 노조결성을 논의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지금처럼 국가경제가 어려운 국면에서 공무원이 노조결성을 추진하는 것은 자칫 한가한 주장으로 비쳐져 설득력을 얻는데 실패할 우려가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 국제노동기구가(ILO)가 정부에 결사의 자유 확대를 촉구했다고 하나, 선진국들도 ILO의 권고를 자국의 상황을 고려해 신축성있게 선별적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법을 개정해서라도 공무원노조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상황과 국민정서에 비춰 무리한 주장임을 받아들이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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