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사범 재판 지연사례]"의정때문에…"

  • 입력 2001년 4월 9일 18시 36분


4년마다 한번씩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면 선거사범 재판과 관련, 가능한 한 질질 끌려는 정치인과 법원 사이에 치열한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9일 대법원이 발표한 ‘16대 국회의원 선거범죄 재판현황’은 이런 좋지 않은 관행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한나라당 정인봉(鄭寅鳳)의원의 경우. 정의원은 지난해 5월 기소된 뒤 15차례 소환을 받았지만 단 5차례만 법정에 나왔다. 법원은 정의원을 소환하기 위해 두차례에 걸쳐 구인장과 체포동의요구서를 발부했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의원은 지난해 10월 법원이 국회에 체포동의요구서를 보내려 하자 “앞으로 재판에 잘 나가겠다”는 ‘확약서’까지 썼지만 또다시 ‘의정활동’을 핑계로 댔다. 결국 그에 대한 재판은 법정 재판시한인 6개월(지난해 11월31일)을 4개월이나 넘긴 현재까지도 진행중이다.

민주당 장영신(張英信)의원의 경우도 항소심에서 열린 7차례 공판 중 5차례의 공판에 불출석해 현재 법정 재판시한인 ‘항소 후 3개월’을 3개월 이상 넘겨 재판을 받고 있다. 서울고법의 담당 재판부는 “장의원이 임시국회 일정과 동남아시아에서 열리는 회의 참석 등을 이유로 댔으나 나머지는 이유가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국회의원 당선의 효력을 다투는 재판 70건 중 1심에서 재판시한인 ‘기소 후 6개월’을 넘겨 선고가 내려졌거나 현재도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은 모두 12건. 이중 피고인의 불출석이 주된 원인인 사건은 7건으로 절반이 넘는 58%를 차지하고 있다. 항소심의 경우 28건 중 법정시한인 ‘항소 후 3개월’을 넘긴 사건은 모두 11건이며 이중 피고인의 불출석이 주된 사유인 경우는 7건으로 63%를 차지했다. 법조계는 아직도 법원이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재판을 연기해 주거나 이유 없이 불응하더라도 구인장 발부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관행이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지난해 개정된 선거법은 판사가 ‘반드시’ 법정 재판시한을 준수하도록 한 만큼 재판 불출석에 대한 보다 강력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한편 일부 법관들은 “항소심 및 상고심에서 3개월 이내에 재판을 마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은 만큼 법정시한을 다소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석호·이정은기자>kyle@donga.com

▼의원직 상실 '커트라인' 벌금 100만원 안넘게▼

법조계에서는 한때 ‘국회의원의 값은 20만원’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선거법을 위반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가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의원직을 잃게 되는데 재판에서 ‘벌금 80만원’짜리 판결이 내려지고 이에 따라 ‘20만원’의 격차로 의원직을 유지하는 의원들이 많이 생겨 나온 말이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야당인 한나라당을 탈당한 15대 홍문종(洪文鐘) 전의원은 98년 9월 서울고법에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아 지난해까지 임기를 마쳤다.

94년 4월에는 당시 여당인 민자당 박범진(朴範珍)의원이 역시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또 93년 2월에도 민자당 김찬우(金燦于)의원이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아 ‘20만원’ 차로 의원직을 유지했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지난해 총선 직전 선거전담 법관회의에서 일부 판사들은 ‘벌금 80만원’ 판결을 선고하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 벌금 80만원 판결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80만원’ 외에도 ‘90만원’과 ‘70만원’ ‘50만원’ 등으로 의원직 상실과 관계없는 벌금형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9일 대법원이 공개한 ‘16대 국회의원 선거범죄 재판현황’에 따르면 국회의원 당선자 본인이 1심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아 의원직 상실 위기에 놓인 의원은 민주당 장영신(張英信)의원 등 6명으로 집계됐다.

반면 민주당 이정일(李正一)의원 등 7명은 똑같은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액수가 100만원미만이어서 의원직 상실 위기를 넘겼다. 7명 중에는 전통의 ‘80만원’이 3명으로 가장 많았고 90만원이 1명, 70만원이 1명이었으며 50만원도 1명 있었다.

또 국회의원 당선자의 선거사무장이나 회계책임자는 징역형(집행유예) 이상을 선고받을 경우 의원 본인이 의원직을 잃게 되는데 민주당 정정언(張正彦)의원은 1심에서 선거관련자들이 징역형을 선고받아 의원직 상실 위기에 몰렸다가 항소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아 ‘구제’됐다. 같은 당 장성민(張誠珉)의원의 경우도 선거관련자들이 검찰에 구속돼 긴장하기도 했으나 지난달 30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16대 의원 당선자 및 관련자 의원직 유지판결 사례
당선자 및
관련자
소속당 및
지역구
혐의1심 재판결과관할법원
이정일민주당
해남-진도
허위학력 기재와 명함배포, 상대후보 모욕벌금 90만원광주지법
해남지원
김경천민주당
광주 동
상대후보 비방벌금 70만원광주지법
이창복민주당
강원 원주
학력 허위기재벌금 50만원춘천지법
원주지원
정우택자민련 충북 진천-음성-괴산아파트 호별방문해 지지 호소벌금 80만원청주지법
조정무한나라당
경기 남양주
허위학력 기재,
상대 후보 비방
벌금 70만원서울지법
의정부지원
김무성한나라당
부산 남
상대 후보에게 500만원 제공벌금 80만원부산지법
권오을한나라당
경북 안동
자동전화응답기 통한 불법선거운동벌금 80만원대구지법
안동지원
장정언의원
회계책임자 및
선거사무장
민주당
북제주
읍면 책임자 등에게 3400만원 제공1심에서 각각 징역1년 집유2년,
징역10월 집유2년.
항소심에서 모두 벌금형
제주지법
장성민의원
선거사무장과
회계책임자
민주당
서울 금천
선거구민과 동책 등
에게 각각 2040만원
과 1900만원 제공
벌금 1500만원과
500만원
서울지법
남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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