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부터 시행된 '교통법규 위반 신고보상금제'로 지난달 말까지 모두 5만4299건의 교통법규 위반행위가 시민들에 의해 신고됐다.
신고 건수가 많아지면서 고발자 중에는 디지털 카메라 등 첨단장비를 동원해 9일동안 5000건의 교통위반을 적발한 '고수'가 등장하는가 하면, 교통 위반이 자주 적발되는 길목마다 전문 신고꾼들이 모여드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신고가 보상금을 노린 전문 신고꾼들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자 이 제도가 과연 교통문화 선진화에 도움이 되느냐는 논란이 시민들 사이에서 일고 있다.
경찰은 자체 인력만으로는 단속에 한계가 있는 데다 경찰관이 없어도 단속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신고보상금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시민들은 늘 감시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아 불쾌하다며 불신감을 조장하는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회사직원 절반이 찍혀▼
"사무실 직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전문 감시꾼들의 카메라에 찍혀 운전면허가 정지될 판 입니다"
대전 상공회의소 직원인 김 모(43)씨는 요즘 퇴근하기가 무섭게 교통 범칙금 통지서가 집으로 날라 들었는 지 확인해야 한다.
최근 상공회의소 인근 목련길에서 전문 감시꾼들이 진을 치고 감시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직원 대부분이 한 두 통의 교통 범칙금 통지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대전 둔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13일부터 지금까지 1개월 동안 서구 둔산동 목련길에서만 중앙선 침범으로 시민 단속카메라에 적발된 건 수는 모두 4천여건에 이르고 있다.
이는 유성쪽에서 둔산 신도심으로 진입하려는 차량들이 계룡로를 타고오다 계룡로사거리에서 좌회전 한 뒤 통행량이 많은 타임월드 백화점 앞 길을 피해 우측 이면도로를 이용, 상공회의소 옆 목련길로 빠져나가면서 불법 좌회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길은 시청 등 둔산쪽으로 가는 지름길인 데다 교통량도 많지 않아 운전자들이 불법 좌회전의 유혹을 쉽게 느끼고 있어 전문 감시꾼들의 표적이 되고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최근 임시로 규제봉 5개를 설치, 불법 좌회전을 막고 있지만사정을 모르는 운전자들의 불법 좌회전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감시 카메라에 단속된 박 모(47.회사원.대전시 서구 변동)씨는 "불법 좌회전이야 어쨌든 잘못이지만 전문 감시꾼들의 단속에 적발됐다는 게 매우 불쾌하다"며 "차량들의 좌회전을 허용하던 지 아예 진입을 막던 지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둔산서 관계자는 "하루에 100여건씩 밀려드는 카메라 단속 신고와 적발된 시민들의 항의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도로 여건 상 좌회전을 허용할수는 없어 규제봉을 추가로 설치하는 등 계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목 좋으면 하루 100여건 '찰칵'▼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성수대교 남단 교차로 앞. U턴 신호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차량행렬의 끝 부분에 서있던 차량들이 U턴선에 도달하기 전 중앙선을 넘어 반대방향으로 사라진다.
이를 놓칠세라 인도 쪽 아파트 담벼락에서 보상금을 노린 전문고발꾼들이 몰래 숨어 불법 U턴하는 차량을 모조리 카메라에 담고 있다.
영등포역 앞에서 사진을 찍다 '소문’을 듣고 최근 이 곳으로 자리를 옮긴 한모씨(28)도 그 중 하나. 화단 담벼락에 발을 쳐 카메라를 가린 채 중앙선을 넘는 승용차를 모조리 담고 있었다. 그가 적발하는 위반건수는 하루평균 100여건. 매일 오전 경찰서에서 전날 찍은 사진을 접수시킨 뒤 이 곳으로 와서 오후 5시경까지 셔터를 눌러댄다.
지난해 인형방을 차렸지만 예상외로 부진해 망하다시피 한 그는 100여만원을 들여 카메라와 렌즈를 구입해 지난달 말 이 일에 뛰어들었다.
한씨는 비교적 일이 숙달된 데다 이 곳이 '목’이 좋아 하루 100여건을 찍는다. 아직까지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아 정확한 수입은 안 나오지만 그동안 대략 400여건을 신고, 120만원의 보상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한씨는 "필름값이나 현상비를 제외하면 실제 수입은 100만원에 못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이 남들 보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 한씨의 설명. "일반필름을 쓰면 안 됩니다. 감도 400 이상의 고감도 필름을 써야 번호판이 선명하게 나오죠. 위치를 잘 고르는 것도 기술이고요."
하루종일 한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봐야 하는 신체적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한씨 옆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있던 신모씨(42)는 "가끔 운전사들이 사진 찍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와서 '멀쩡한 사람이 할 짓이 없어 이런 일을 하느냐'며 멱살잡이를 할 때는 착잡한 심정"이라며 "요즘엔 아이들 보기도 민망하다"고 털어놓았다.
경찰은 자체 인력만으로 단속에 한계가 있는 데다 경찰관이 없어도 위반하면 단속된다는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신고보상금제와 전문고발꾼의 '활약'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한다.
이들의 행위가 시민들간의 불신을 조장한다는 세간의 비난에 대해 고발꾼들과 경찰은 "사실 전문 고발꾼들이 아니면 누가 평상시에 카메라 들고 다니면서 위반차량을 찍겠느냐”고 반문한다.
한씨 등은 "사실 우리들도 떳떳하지는 않지만 법규위반을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하며 큰소리치는 시민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메라 든 남자를 조심하라 ▼
'아파트 앞에서 카메라를 소지한 20대 남자를 조심하라.'
교통법규 위반차량을 경찰에 신고하면 건당 3000원을 주는 제도가 시행(3월 10일)된 이후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에서는 5가구당 1가구가 '전문 적발꾼'에게 '봉변'을 당했다.
천안에 사는 한 20대 남자는 천안시 쌍용동 쌍용주공아파트 9, 10단지(2864가구) 주변에서 신호위반과 중앙선침범 차량을 촬영해 3월말경 600여건, 4일 60여건을 신고했다.
170만원짜리 카메라를 일부러 구입했다는 이 남자는 추가로 300∼400여건을 경찰에 신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자에게 '봉변'당한 주민들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매일 자체방송을 통해 '적발꾼 출현'을 알리고 있다.
이 아파트 주민 김모씨(48·회사원)는 "위반사실은 인정하지만 함정단속에 걸린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주부 박모씨(38)는 "시민간의 불신을 키우면서까지 위반차량을 적발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곳에서 위반차량이 잇따라 적발되는 것은 출근 시간대에 아파트 단지에서 시내로 가려는 차량이 교차로 부근에서 많이 밀리면서 신호가 바뀐 뒤에도 진행하기 때문.
또 차량통행이 적은 오후 시간대에는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불법 좌회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찰분석 결과 이 남자가 낸 사진 400여장은 위반사실이 분명하게 나타나 신고보상금 지급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 남자가 받게 될 돈은 120만원이며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
경찰 관계자는 "보상제도 시행 이후 '전문 적발꾼'이 전국 100여곳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9일간 5000건 적발한 '사냥꾼' ▼
건교부와 경찰청의 교통 신호위반 포상금 제도가 시행된 후 전국 처음으로 울산의 한 20대가 9일 동안 한 장소에서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 5000대를 사진으로 찍어 경찰서에 제출했다.
지난달 29일 울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오모(23·울산시 울주군)씨는 중앙선을 불법 침범한 차량 5000대를 사진으로 찍어 컴퓨터 컬러프린터로 인쇄한 A4 용지 5000장을 증거물로 경찰서에 냈다.
오씨는 지난 15일부터 23일까지 울산시 남구 삼산동 번영교 입구 도로 한곳에서만 중앙선을 불법 침범하는 차량을 하루 평균 555건씩 촬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씨는 특히 불법 장면을 찍기 위해 800만원을 들여 망원렌즈와 연속 촬영이 가능한 디지털 카메라를 미리 구입해 U턴 신호를 6∼7m 앞두고 중앙선을 도는 차량을 주표적으로 삼고 집중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씨는 지난 1월 16일부터 지난달 18일까지 남구 신정동 공업탑로터리 부근에서 택시 운전사가 담배꽁초를 버리는 장면 359건을 비디오로 촬영해 남구청으로부터 1건에 3만원씩 1077만원의 포상금을 받은 `포상금 전문 사냥꾼'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오씨가 제출한 증거물은 A4 용지 1장에 차량 1대가 중앙선을 불법으로 넘는 3장면씩을 연속 촬영한 것으로 대부분 불법이 인정된다"며 "중앙선 침범 운전사들로부터 1건에 6∼7만원씩의 범칙금을 받은 후 오씨에게 포상금을 지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오씨는 1건에 3000원씩 모두 1500만원의 포상금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교통위반 차량을 하루 평균 60∼70건씩 컴퓨터에 입력할 수 밖에 없어 5000건을 입력하려면 80일 가량 걸릴 것"이라며 "포상금을 노린 사냥꾼이 또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곤욕을 치른 전문 신고꾼 ▼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카메라에 담다가 운전자와 다투거나 불법 운행을 조장한 혐의로 곤욕을 치르는 신고꾼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지난 9일 교통법규위반 신고 보상금을 타기 위해 차량을 일부러 서행운전해 뒤따르는 차량들이 불법 U턴을 하도록 유도한 A씨(26) 등 2명을 교통방해 혐의로 입건, 조사했다.
A씨는 지난 7일 오후 1시경 광주 서구 농성동 건강관리협회 앞 네거리 U턴 구간 30m 앞에서 승합차를 천천히 운전, 뒤차가 불법 U턴을 하면 건너편에 있는 일당이 사진을 찍도록 하다 적발된 혐의를 받고 있다.
더욱 놀라운 일은 A씨 등의 빗나간 유도단속을 신고한 사람도 이곳에서 위반 차량의 사진을 촬영하던 '전문 사냥꾼'으로, A씨가 탄 승합차가 4차례나 U턴을 한 뒤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서있는 것을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지난달 26일 교통법규위반 신고 포상금을 타기 위해 중앙선을 침범해 좌회전하는 차량들을 몰래 사진촬영하던 정모씨(40·보험사 직원)와 운전자 이모씨(39·회사원)를 각각 폭행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4시반경 부산 해운대구 좌동 장산체육공원 앞길에서 불법 좌회전 차량의 사진을 찍다가 이를 본 이씨와 말다툼 끝에 서로 주먹을 휘둘러 전치 2주씩의 상처를 입혔다.
정리=안병률/동아닷컴기자 mok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