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진단]천호동 '텍사스촌' 사라지나

  • 입력 2001년 4월 10일 18시 43분


서울 강동구 천호동 423일대 속칭 ‘천호동 텍사스’. 서울의 대표적 홍등가 중 한 곳이었던 이곳에 ‘황혼’이 지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이곳 400여평의 대지에 20개 윤락업소가 ‘입주’해 있던 건물 1개 동을 소유한 김모씨(68)가 최근 건물을 자진 철거한 일. 건물주는 이 부지 위에 주차장을 지을 생각이며 장기적으로는 이 일대의 재개발에 활로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이 서울의 대표적 ‘홍등가’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초반.

성남 등에 밀집한 군부대 군인들을 겨냥해 천호동 410에 조그만 ‘방석집’들이 들어선 것이 천호동 텍사스의 시작이었다. 차츰 이름이 알려지면서 80년대 중반에는 천호동 423일대에 현재의 윤락촌 형태를 갖췄다. 전성기 때는 이 일대 4000여평에 업소만 200개를 웃돌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30년 넘게 번성해 온 천호동 텍사스에 ‘철퇴’가 내려진 것은 96년 중반부터.

당시 강동경찰서에 부임한 김기영서장이 ‘사창가와의 전쟁’을 선포,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기 때문. 전방위로 벌여온 ‘고사(枯死)작전’으로 인해 200개를 넘던 업소가 57개로 ‘급감’했다.

그러나 업주들의 반발도 만만찮았다. 행정 당국의 ‘외압’에 밀려 업소의 70% 정도가 문을 닫긴 했지만 ‘은밀한 거래’는 사그라지지 않았기 때문.

올해 초 강동서에 부임한 주상용서장은 더 강도 높은 ‘토벌전’을 선언했다. 매일 밤 병력을 투입해 가로등을 대낮같이 밝히는 한편 골목마다 폐쇄회로 TV를 설치, ‘밤손님’을 차단하고 나섰다. 강동구청과 합동으로 건축법 위반 행위 점검을 벌인 것도 단속의 효과를 높였다.

최근 들어 경찰은 아예 전담반을 편성, 윤락녀와 포주뿐만 아니라 해당 건물주까지 수시로 만나 “영업을 계속할 경우 건물주도 윤락행위방지법에 걸릴 수 있다”고 ‘각개 격파’에 나섰다. 윤락업소의 자진 퇴출을 종용한 셈이다.

강동서의 한 관계자는 “현재 일부 여관업소도 철거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등 ‘와해’가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재개발 계획이 알려지면 이 일대 정비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끈질긴 직업 중 하나인 ‘매춘’이 당국의 생각처럼 과연 근절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강동구청의 한 관계자는 “이 일대에는 재래시장 3곳이 인접해 있어 지구단위계획을 세우기 위한 주민들의 의견 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 지역 건물주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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