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최완용/속리산 정이품松 '배필' 찾아주자

  • 입력 2001년 4월 10일 19시 02분


속리산 초입에 서있는 정이품송(正二品松)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목 가운데 하나이다.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이 소나무의 나이는 600여년이다. 1464년 세조대왕이 속리산에 행차할 때 어가(御駕)인 연(輦)이 나무에 걸리려고 하자 가지를 스스로 위로 쳐들어 행차를 도와 정이품의 벼슬을 하사받았다고 해서 정이품송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연을 간직한 정이품송이 최근 기력을 잃고 바람에 가지가 꺾이는 등 우아한 자태를 잃어가고 있다. 그 동안 정이품송을 회복시키고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혈통보존을 위한 접붙이기는 너무 나이가 들어 어렵고 주변의 혈통이 좋지 않은 나무에서 가루받이가 되어도 정이품송의 전통을 퇴색시킬 수 있다.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정이품송의 혈통 보존을 위해 정이품송의 '혼례'를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신부감으로는 좋은 가문 즉, 우리나라 대표적 소나무의 군락지이며 역사성을 지닌 강원 삼척에 있는 조선 태조의 5대조 묘인 준경능과 같은 숲에서 좋은 나무를 간택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송화가루가 날리는 봄철에 정이품송에서 꽃가루를 받아 간택된 소나무를 신부로 삼아 나무의 혼례인 교배를 시키는 것이다. 혼례 장소로는 간택된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할 수도 있으나 험준한 산의 암꽃이 피어 있는 높은 나무가지에 가루받이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다행히도 산림청 임업연구원에서는 우리나라의 유명 소나무 혈통을 보존하기 위하여 준경능을 포함한 전국 명산에서 좋은 소나무를 골라 접붙이기로 복제(cloning)하여 혈통보존원(Clone Bank)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곳에서 교배하면 될 것이다.

소나무는 교배가 있은 이듬해 봄에 수정되어 가을에 씨앗을 생산하게 된다. 이렇게 얻은 씨앗의 반은 신랑인 정이품송, 나머지 반은 신부로 간택된 소나무의 혈통을 이어받게 된다. 이러한 자연의 원리를 이용해서 얻어낸 좋은 혈통의 씨앗으로 어린 나무를 길러 속리산은 물론 독립기념관, 현충사 등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에 심어서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면 좋지 않겠는가.

최완용(임업연구원 임목육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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