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들이 본 죽음]"사랑 못해본 것이 가장 아쉬워"

  • 입력 2001년 4월 12일 19시 06분


‘사랑 사랑 사랑…. 내 나이 이제 스물(우리 나이)이다. 죽기엔 너무 아쉬운 나이.’

새내기 여대생들이 쓰는 유서. 심모양(19)의 유서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211번 등장한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아쉬움을 유서 가득히 담았다. 유모양(19)은 결혼을 못하고 죽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죽을 때 웨딩드레스를 입혀달라고 부탁했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주철환(朱哲煥)교수는 최근 자신이 맡고 있는 교양과목 ‘매스컴과 사회’ 시간에 217명의 수강생으로부터 ‘유언장’을 받았다. 수강생들은 간혹 고학년도 있지만 대부분은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

이들이 유언장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사랑’ ‘남자친구’ ‘배낭여행’ ‘결혼’ ‘부모님’ ‘미팅’ 등이다.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았다. 세계 여행, 카레이싱, 내가 그린 그림과 찍은 사진 벽에 걸기, 100편 이상 영화보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포도주 만들어주기….

가족에 대한 사랑도 유서 곳곳에서 발견됐다. ‘나 아빠 딸로 태어나 얼마나 행복했는지 말하고 싶어. 한밤중에 자다 깨서 안방으로 달려가곤 했잖아요. 모기 잡아 달라고. 아빠 어떻게 한번도 귀찮아하지 않으셨어요?’

감상적인 유서들 외에 몇몇 사회적 의미를 담은 유서들도 눈에 띄었다. 한국음악과 4학년 김정은씨(23)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고 반드시 화장하고 장기를 기증해달라’고 썼다.

주교수는 “자아와 세계가 충돌하는 때에 유서를 쓰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설계하라는 취지였다”며 “학생들의 유서에서 신세대들의 다양한 가치관을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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