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문광부의견 묵살 안팎]고시강행 명분 '허구' 드러나

  • 입력 2001년 4월 12일 23시 35분


12일 밝혀진 문화관광부의 신문고시(告示) 관련 의견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 제정 강행의 명분으로 내세운 ‘근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준다. 또 고시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공정위가 해온 ‘관련 단체 의견수렴’이란 것이 얼마나 ‘공정위의 입맛’에만 맞게 이뤄졌는지도 드러났다.

문화부가 ‘고시 제정의 필요성은 수긍한다’고 밝힌 것은 같은 정부의 관련 부처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기는 어렵다. 그러나 ‘의견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공정위가 그동안 밝혀 온 주장에 상당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문화부 의견을 ‘묵살’하면서까지 ‘5월 1일 신문고시 시행’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돌진’한 배경에 많은 의혹이 뒤따르는 것이다.

신문고시를 심의한 규제개혁위원회 경제1분과위는 또 3차례 회의를 가진 뒤 민간위원은 배제한 채 정부측에서만 일방적으로 회의 내용을 발표하는 ‘독점 행위’를 했다.

▽문화부, “자율 규약 잘 정착돼”〓문화부는 우선 “신문협회의 공정경쟁규약이 2000년 11월부터 대폭 강화돼 상당한 개선 효과를 거두는 등 신문 판매를 위한 (신문)업계의 자율적인 공정 경쟁 활동이 정착돼 가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신문고시 제정을 위해 내세운 “신문고시 폐지 후 자율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이런 문화부 의견은 공정위보다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상당수 민간위원들이 지적하고 있는 “고시 부활의 마땅한 근거가 없다”는 논리와 큰 흐름에서는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문화부는 또 ‘고시를 만들더라도 언론 자유와 기업 경영의 자율을 위축시키지 않는 방향에서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그러나 공정위는 신문고시 초안에서 신문사 경영 활동에 광범위하게 간여할 수 있는 조항들을 대거 넣었다.

▽공정위, 의견 수렴 제대로 했나〓특히 문화부는 무가지 비중 10%는 신문발행부수공사(ABC)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 현실을 감안해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고 주간지의 경우 30%까지로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는 한때 내년부터 무가지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고시안을 만들었다가 규개위로부터 제지당하기도 했다. 결국 공정위는 신문협회와 문화부 등의 의견은 묵살하고 ‘빅 3 신문’을 집중적으로 비판해 온 우리 사회의 일부 주장만 받아들였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공정위는 그동안 신문고시 제정 필요성을 주장하는 기자간담회를 여러 차례 가지면서도 문화부의 이런 의견을 밝히지 않아 고의로 숨기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한영섭(韓榮燮) 공정위 경쟁촉진과장은 3월말 “문화부는 언론탄압용으로 비치지 않도록 고시를 제정하라는 의견을 냈다”고만 말했다. 공정위측은 심지어 “문화부에서는 이견이 없다”고까지 주장해왔다.

▽민관합동기구에서 민간 목소리는 막아〓규제개혁위원회(www.rrc.go.kr)는 국무총리실 산하 민관 합동의 의사결정기구로 위원회 성격상 민간위원들이 더 많다.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는 전원회의의 경우 전체 20명중 민간위원이 13명이나 된다. 규개위는 지금까지 신문고시 부활을 위한 심의를 하는 3차례 분과회의를 열면서 1차회의 때는 회의 결과를 아예 발표조차 하지 않았고 2, 3차 회의 내용 발표는 모두 정부측인 국무조정실에서 맡았다.

나승포(羅承布)국무조정실장의 대리인으로 회의에 참석한 정강정(鄭剛正)국무조정실 규제개혁조정관이 대변인 역할을 한 것. 규개위 경제1분과위원장인 안문석(安文錫·행정학)고려대교수는 2차례 브리핑에 나타나지 않았다. 민간위원들은 회의 내용을 공정하게 보도하도록 하기 위해 안교수가 회의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냈으나 그는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규개위 회의 때마다 분위기 잡아〓공정위는 3차례 분과위가 열리는 중에 3번이나 ‘고시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자료를 내놨다. 1차회의 직후엔 기자들에게 개별적으로 메일을 뿌려 홍보했고 2차회의 직후 조학국(趙學國)사무처장이, 3차회의 직전엔 이남기(李南基)위원장이 직접 나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모두 고시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공정위는 또 신문고시에 대한 이해 단체들의 의견 수렴 과정에서 정작 당사자인 신문협회측 의견은 거의 무시한 반면 시민단체 주장은 대부분 받아들이는 편향된 정책 입안 자세를 드러냈다.

<권순활·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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