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적차 "안비켜?다쳐!"…적재불량 단속규정 시급

  • 입력 2001년 4월 17일 18시 25분


《야간을 틈타 과속운행을 일삼는 과적트럭과 트레일러. 이들 차량은 거리의 무법자다. ‘달리는 흉기’나 다름없다. 철제빔이나 코일 같은 강철 구조물을 잔뜩 싣고 제대로 잠금 장치도 갖추지 않은 채 곡예운행을 한다. 화물이 떨어져 뒤따르던 차량이나 마주 오던 차량이 ‘날벼락’ 같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경찰은 전국의 고속도로와 산업도로 등에서 이들 차량을 단속하고 있지만 화물의 ‘적재상태’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단속규정마저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실태〓16일 오후 7시경 경북 포항시 죽장면 죽장 휴게소 부근 31번 지방도.

원통형 철제코일 철제빔 등 강철 구조물을 잔뜩 실은 대형트럭과 트레일러들이 굉음을 내며 시속 60∼70㎞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이곳은 편도 1차로로 곳곳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데다 커브길이어서 시속 30㎞ 정도로 안전운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경찰관계자의 지적. 주민 한모씨(52)는 “한밤중에 대형 트럭들이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경적으로 밤잠을 설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언제 대형사고가 날지 몰라 항시 가슴을 졸이고 있다”고 말했다.

14일 밤 10시 50분경 이곳에서는 철제빔 70개를 싣고 달리던 18t 트럭에서 30여개가 갑자기 쏟아져 내려 마주 오던 승합차를 덮치는 바람에 승합차의 운전자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경찰은 “무거운 철제빔이 커브길에서 한쪽으로 쏠리면서 이를 지탱하고 있던 쇠밧줄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끊어졌다”고 말했다.

주민 김일호씨(40·포항시 용호동)는 “포항철강공단 진입도로∼남구 효자동 효자검문소∼경주시 경계지점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의 경우 트레일러와 대형트럭들이 과적 상태에서 난폭운전을 일삼아 승용차 운전자들이 단단히 ‘몸조심’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4시20분 경부고속도로의 출발점인 부산 금정구 두구동 부산톨게이트.

부산항을 통해 들어온 각종 산업자재가 컨테이너 트레일러와 화물트럭에 실려 꼬리를 물고 고속도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상당수 트럭들이 적재함을 그대로 노출시킨 채 위험한 곡예운행을 하고 있었다.

보조 화물차량까지 붙인 8t트럭에는 화학물질로 보이는 검은색 드럼통 수십 여 개가 빼곡히 실려 있었으나 잠금장치나 포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뒤따르던 4.5t트럭의 적재함엔 소형 컨테이너가 엄지손가락 굵기의 밧줄 하나에 아슬아슬하게 묶여 있었다.

컨테이너를 싣게 돼 있는 트레일러 2대는 컨테이너 대신 화학물질로 추정되는 커다란 포대 20여 개씩이 각각 실려 있었으나 아무런 고정장치도 달려 있지 않았다.

16일 오후 전남 광양시 광양읍 우시장 4거리. 광양읍내에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차량들로 항상 북적이는 이 곳에서 대형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 차량은 무법자나 다름없다.

이 곳을 지나는 트레일러 차량은 하루 평균 500∼600여대. 여천산업단지에서 광양 컨테이너 부두까지 국도 2호선 70여㎞를 운행하는 이들 차량은 곳곳에 커브길과 내리막길이 많은데도 컨테이너 잠금장치를 소홀히 한 채 과속을 일삼고 있다.

지난해 여천산업단지∼광양 컨테이너 부두 간 도로에서 발생한 컨테이너 낙하사고는 모두 3건. 지난해 9월30일 오전 7시15분경 광양읍 우시장 앞 사거리에서 10t짜리 컨테이너 2개를 싣고 가던 트레일러가 커브길을 돌다 컨테이너가 떨어지면서 신호 대기중이던 2.5t 트럭을 덮쳐 운전사가 숨졌다.

▽전문가 의견〓김동녕 단국대 교수(토목공학)는 “선진국의 경우 화물을 묶는 줄과 묶음, 고리의 강도, 버팀목 사용 방법, 원통형 절구조물의 적재요령 등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해 단속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화물의 적재불량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단속 규정마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구·광주·부산〓정용균·정승호·석동빈기자>cavat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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