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에는 4·19가 나기 한 해 전인 1959년 1월4일부터 12월30일까지 이기붕씨 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명단과 방문자들의 선물 목록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동아일보의 마크가 선명히 찍힌 400여장의 갱지에 쓰여진 것으로 미루어 당시 이씨의 측근들이 방문자와 선물 목록을 기록해둔 문서를 4·19혁명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이 입수해 그대로 옮겨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출입시간이 분 단위로 적혀 있는 이 명단에는 당시 자유당 실권자들과 장 차관들이 이씨 집을 자주 들락거리며 온갖 선물을 갖다바친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선물 목록에는 갈비, 생선, 과일은 물론 코카콜라 한 상자와 휘발유 3드럼, 포플린 3필, 아이스크림 3통, 심지어 병아리 3마리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특히 자유당 평의원이었던 김성곤(金成坤)의원 부부와 신언한(申彦瀚)법무부 차관 부부의 활약이 눈에 띈다. 두 부부는 열흘이 멀다 하고 이씨 집을 드나들며 이불, 새우젓, 소금 등을 끊임없이 실어나른 것으로 나타나 있다. 7월24일 우장춘(禹長春)박사가 ‘씨없는 수박 3통’을 선물했다는 기록도 당시의 풍속사를 살필 수 있는 내용이다.
이 기록은 아울러 당시 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공식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4·19 직전의 급박했던 정치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해준다.
1959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건으로 꼽히는 민주당의 정부통령 후보 선출일이었던 11월26일 기록만 살펴봐도 이기붕씨 자택이 ‘소(小) 경무대’였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이날 민주당 후보지명 전국대회가 열린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 경찰배치를 진두지휘했던 최인규(崔仁圭) 내무장관은 오전 10시45분과 오후 3시45분 두 차례나 이씨 집을 찾았다. 또 오전 8시20분경 당시 자유당 정권의 경찰력을 장악하고 있던 곽영주(郭榮周) 경무대 경무관과 신도환(辛道煥) 반공청년단장이 나란히 찾아온 것을 필두로 이씨의 자택에서 자유당 수뇌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기붕씨는 1945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비서로 시작해 서울시장 국방장관을 거쳐 60년 부통령에 당선돼 권력을 전횡했으나 4·19 혁명 직후 경무대로 피신했다 전 가족이 자살했다.
이 기록을 살펴본 성균관대 서중석(徐仲錫·사학과)교수는 “1공화국 당시 자유당 당무회의는 물론 국무회의 자료도 일절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자유당 정권 말기 연구를 위한 1급사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