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캠퍼스서 첫 입시학원 채용시험 대학원-졸업생 몰려

  • 입력 2001년 4월 19일 18시 30분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처음이지만 자신 있습니다.”

“지원자가 많아서 다 뽑진 못하지만 잘 검토해서 합격 여부를 연락드리죠.”

서울대 법대 출신의 정모씨(31)는 이력서 졸업증명서 사진 등을 건네받은 면접관에게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을 설명했다.

여느 기업체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이 아니다. 19일 서울대 경영대 1층 로비에서 열린 면접은 뭇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중고교생 대상 수학 전문 A입시학원이 서울대 졸업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학원강사를 채용하는 자리였다.

올 2월 법대를 졸업한 정씨는 고교 이과 출신이어서 수학을 꽤 잘한다며 자신을 설명했다. 그는 “학원강사 면접을 실시한다는 광고 전단을 도서관 근처에서 보고 왔다”면서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취직이 잘 안됐는데 학교까지 찾아와 면접을 해 학원측에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원측의 근로조건 및 대우가 ‘전임강사는 주 5일 근무에 월 130만∼170만원, 시간제 강사는 주 2∼3일 근무에 월 60만∼100만원’. 개인 과외를 알선해 추가로 수입을 올릴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이날 오전 11시반부터 오후 3시까지 졸업생과 대학원생 등 10여명이 면접을 치렀다. 큰 혼잡은 없었지만 채용 인원은 2명인데 미리 면접을 예약한 졸업생과 대학원생이 5명이나 됐다는 게 학원측의 설명. 졸업을 앞둔 4학년 재학생의 상담 신청도 잇따랐다.

사범대 4학년 박모씨(23·여)는 “교내 취업정보실에 과외를 신청했다 대기자만 수천명이라는 말을 듣고 아예 포기했다. 일단 학원 강사를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할까 했는데 재학생은 뽑지 않아 실망했다”면서 아쉬운 듯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서울대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강사 경력이 10년이라고 밝힌 이 학원 정모원장(34)은 “취업을 못한 졸업생이 많다는 말을 듣고 면접하러 왔다”면서 “의외로 문의도 많고 호응이 좋아 학원 강사진을 모두 서울대 출신으로 구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부 서울대생은 이 같은 광경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취업난에 ‘서울대의 명성’이 뿌리째 흔들린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경영대 복학생 김모씨(25)는 “학원이 서울대에서 면접한다는 사실이 놀랍다”면서 “말로만 듣던 취업난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대의 대학원 진학과 군 입대를 제외한 순수 취업률은 97년 30.7%, 98년 26.7%, 99년 31% 등으로 최근 몇 년간 30% 안팎에 머물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진학과 입대 등을 포함한 총취업률도 최근 몇 년째 70%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대 사회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준비중인 황모씨(32)는 “최근 6개월 정도 학원강사를 했는데 박봉에 시달리며 시간강사를 하는 박사과정 친구들이 부러워하더라”면서 “일자리 구하기 힘들어지고 강사의 처우가 열악해 고급 인력들이 학업을 접고 돈벌이에 나서는 일이 많아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용기자>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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