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남발 관행 쐐기…법조계 파장 클듯

  • 입력 2001년 4월 21일 01시 30분


서울지법 남부지원이 20일 재청구된 구속영장을 ‘각하’한 것은 이미 기각된 ‘헌 영장’을 마치 ‘새 영장’인 양 포장해 다시 청구하지 말라는 법원의 엄중한 경고로 해석된다.

이번 결정은 한번 영장이 기각된 뒤 별다른 진실발견의 노력도 없이 ‘자존심 세우기’식으로 영장을 재청구하는 잘못된 검찰의 관행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큰 파장이 예상된다.

박시환(朴時煥)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A4 용지 13쪽에 이르는 장문의 ‘각하 이유’를 달아 눈길을 끌었다. 박부장판사는 아울러 “재청구된 영장을 심리하는 법원의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향후 법조계에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일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검찰 관행〓결정문에 나타난 박부장판사의 비판은 신랄하다. 그는 “지금까지 검찰은 공안사건 등 영장발부에 의미를 두는 사건에서 심한 경우 구속영장이 기각된 바로 다음날 별다른 추가 자료도 없거나 형식적인 자료만을 보완한 채 재청구를 서너번 반복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또 심한 경우 수사기관에서 영장을 재청구하면서 고의 또는 부주의로 1차 구속영장 기각 관련 문서들을 기록에서 빼버려 영장이 재청구됐다는 사실 자체가 은폐되거나 이미 수사에서 다 드러난 여러 건의 혐의 중 일부로만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면 그제야 다른 혐의를 추가해 영장을 재청구하기도 했다는 것이 결정문이 제기하는 문제들이다.

결정문은 또 ‘체포의 반복’에 대해서도 새로운 의견을 냈다. 형사소송법에는 ‘체포된 피의자에 대해 영장이 기각되거나 영장이 청구되지 않은 때에는 그를 동일한 혐의로 다시 체포하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사전영장이 기각된 피의자에 대해서는 정한 것이 없다.

박부장판사는 결정문에서 “이 규정은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잡고 풀어주고 다시 잡는 것을 반복하며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므로 사전영장의 경우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해석.

▽개선돼야 할 법원 관행〓박부장판사는 “이 때문에 법원은 영장이 재청구되면 발부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영장청구 자체가 법률상 적법한 것인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며 “이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법관은 앞서 첫 영장을 기각한 판사인데도 지금까지는 다른 판사가 재청구 영장을 심리해 사실상 새로 청구된 영장인 양 다뤄 왔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영장 각하사건’은 요건을 갖추지 못한 구속영장의 재청구가 남발되고 법원도 이에 대해 적절한 통제를 하지 못해 위법한 인신구속의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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