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함께 만듭니다]한문수씨 동명이인 오해 "지명수배"

  • 입력 2001년 4월 25일 18시 41분


한문수씨(48·서울 중랑구 면목동)는 23일 오후 5시경 사무실에서 집 부근 파출소 경찰관의 전화를 받았다. 경찰관은 “부산지검에서 당신을 지명수배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죄를 지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부산에 가본 것도 18년 전 친구 결혼식 때 잠깐 들른 것이 유일했다. 경찰관도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당신이 지명수배돼 수사 후 체포하라는 문서가 검찰에서 왔는데 전산망에 혐의내용이 안 떠서 우리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관은 사건번호를 알려 주면서 검찰에 알아보라고 했다. 한씨는 부산지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신분과 사건번호를 알려준 뒤 지명수배된 이유를 물었다.

담당 계장은 “알려 줄 수 없다”며 무조건 출두하라고 했다. 한씨는 “죄진 일도 없는데 본인이 물어보면 알려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으나 “본인이라는 걸 어떻게 확인하느냐. 정 알고 싶으면 직접 내려와서 알아보라”는 대답뿐이었다.

한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파출소로 찾아갔다. 경찰관은 지명수배 문서를 보여준 뒤 직접 부산지검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관은 “수배자 명단에 있다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지명수배 이유를 결국 확인하지 못한 한씨는 귀가한 뒤 청심환을 먹으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한씨는 독자편지를 동아일보사에 보내 하소연했다. 24일 본보 기자가 직접 부산지검에 확인해 보았다. 담당 계장은 그제야 “동명이인을 수배하면서 한씨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적어 빚어진 착오”라고 해명했다. 그는 “한씨가 전화했을 때는 수배자 명단만 보고 한씨가 수배된 것으로 생각했다”며 “본인 여부가 확인 안된 상태에서 지명수배 사유를 알려주면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담당 계장은 또 “관할 파출소에서 전모를 파악해 정확히 알려줬어야 한다”며 “한씨에게 ‘당신이 검찰에 직접 알아보라’고 한 경찰의 직무유기로 빚어진 일”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이에 대해 파출소측은 “검찰 직원의 고압적인 자세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이틀간 불안한 마음을 청심환으로 달래며 지냈어요. 국가 공권력이 청심환만도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자세한 사정을 전해 들은 한씨는 몹시 씁쓸해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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