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발묶인 수도권]"허가내준 공장을 철거하라니…"

  • 입력 2001년 5월 7일 18시 27분


“정부를 믿고 일한 결과가 이런 거라면 어떻게 기업을 운영할 수 있겠습니까.”

경기 화성시 동탄면에 있는 한 전자부품업체 이모 사장(50)은 최근 황당해 하고 있다. 이 사장은 98년 현재의 공장 부지 매입 때 신도시 개발설이 나돌자 건설교통부에 질의서를 보내 ‘개발계획이 백지화됐다’는 답변서를 받았다. 이 사장은 정부를 믿고 공장 건설을 본격화해 올 3월 준공하고 생산가동을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났는데 건교부가 화성 일대에 270만평의 신도시를 조성한다는 발표를 하더라고요. 정부가 이런 식으로 기업하는 사람을 우롱해도 되는 건지 싶기만 하고, 더 이상 회사를 이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화성 신도시 개발이 확정되자 사업예정지 안에 위치한 517개 공장 기업주와 종사자 7500여명이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손해를 입게 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

▼글 싣는 순서▼
① 기업 발목 잡는 공장총량제
② 공장은 허물고 신도시는 개발
③ 여주는 'No', 문막은 'Yes'
④ '대학도 총량제' 논란

이 사장처럼 정부의 말을 믿고 이 일대에 건설이 시작된 공장 146개가 날벼락을 맞게 됐다. 화성상공회의소의 관계자는 “멀쩡하게 지어져 막 가동을 시작한 공장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 게 어떻게 지역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96년 시로 승격한 경기 이천시는 중심부와 주변을 가리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촌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 결과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주민 18만명의 대도시로 성장했지만 경제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공장시설은 시 승격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이천시가 자연보전권역으로 묶여 대규모 공장의 신·증축이 불가능하기 때문. 하이닉스반도체(현대전자)도 이천공장 주변에 차세대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시설을 추가하려다 이 때문에 수 년째 꼼짝도 못하고 있다.

경기도와 지역 기업인들은 “정부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아파트는 수수방관하면서 수도권 인구 집중 억제를 앞세워 지역 주민이 먹고 살 생산시설의 신축은 수도권정비계획법으로 규제하는 모순된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수도권 인구 집중, 아파트가 문제다”〓경기도 임규배(林圭培) 건설도시정책국장은 “수도권의 인구 증가는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진행해 온 대규모 택지 개발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80년 이후 지난해까지 전국에 조성된 택지지구는 모두 537개소, 3억7400만㎡(1억1300만평)다. 이 기간에 경기도를 포함한 수도권에 만들어진 택지지구는 수로는 35%에 가까운 188개소, 면적으로는 50%정도인 1억8409만㎡(5600만평)에 이른다.

그 결과 경기도에서만 96만가구, 350만명이 증가했다. 화성 신도시의 경우 개발이 완료되면 4만 가구 12만명의 인구가 추가된다.

반면 경기도의 공장 종사자 수는 줄어들고 있다. 94년 1만8000개였던 공장이 현재 2만4000개로 30%가 늘었지만 종업원은 78만명에서 69만명으로 11% 감소했다.

▽“택지지구 조성은 불가피한 선택”〓건교부는 이에 대해 택지지구 건설로 수도권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건교부 최재덕(崔在德) 국토정책국장은 “수도권 인구 증가의 특성은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20%라면 자체 증가 인구가 80%를 차지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수도권 거주자의 상당수가 젊은층으로 매년 의정부시 거주자에 해당하는 25만명 정도를 낳고 있어 택지지구 조성은 불가피하다는 것. 또 경기도 일대에 조성되는 택지지구 아파트 입주자 대부분이 서울시민이기 때문에 택지지구 추가 조성으로 비수도권 지역에서 유입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자율적 관리로 전환을〓경원대 도시계획학과 최병선(崔秉瑄) 교수는 “현재와 같은 택지지구 개발은 우려할 만하다”며 “국토균형개발을 위해서는 기업의 지방에 대한 투자 육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경기개발 연구원 이상대(李相大)박사는 “이제 총량만을 규제하는 권역별 획일적 규제에서 벗어나 자율적 관리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수도권 패트롤팀>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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